퀴어 문학, 어디서 시작해요?
퀴어 문학이라고 하면 왠지 무겁거나 비극적인 이야기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예전엔 그런 작품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게이 캐릭터는 대부분 결말이 슬프거나, 정신적 일탈로 그려지거나, 사회의 희생양이었죠.
지금은 달라졌어요. 2016년을 전후로 한국 문단에서 게이 남성의 일상을 유머와 감수성으로 그리는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퀴어 문학의 무게 중심이 이동했어요. 비장함에서 일상으로, 타자화에서 당사자 서사로. 이제 퀴어 문학은 읽기에 부담 없는 장르가 됐어요.
이 리스트는 게이 남성이 읽으면 공감이 가거나,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작품들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했어요. 소설, 해외 번역서, 웹툰, 에세이, 그리고 퀴어 문학을 더 깊이 탐색하고 싶을 때 찾아갈 공간까지요.
BL(Boys' Love)과 퀴어 문학이 다르냐고 물어볼 수 있는데, 둘이 완전히 분리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이 리스트는 판타지화된 로맨스보다 게이 남성의 정체성과 현실을 직접 다루는 작품 위주로 골랐어요.

한국 퀴어 문학,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요?
지금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왜 지금 나왔는지 알아두면, 각 작품의 맥락이 좀 더 선명하게 보여요.
1990년대 이전 한국 소설에서 게이 남성은 비극의 주인공이거나 일탈로 표현됐어요. 2000년 홍석천의 커밍아웃과 같은 해 열린 첫 퀴어문화축제가 퀴어 서사를 가시화하는 계기가 됐고, 2000년대 중반 이송희일 감독의 독립 퀴어 영화들이 문화적 거점 역할을 했어요.
본격적인 변화는 2016년부터예요. 박상영과 김봉곤이 나란히 퀴어 서사 작품으로 주목받으면서, 문단에서 퀴어 문학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어요. 2018년 두 작가가 경향신문 대담에서 나눈 이야기가 이 시기의 변화를 잘 요약해줘요. "울면서 퀴어에 대해 쓰던 것에서 웃으면서 쓸 수 있게 됐다"고요.
2022년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 후보에 오른 이후, 한국 퀴어 문학은 국제 문단에서도 주목받고 있어요. 지금이 한국 퀴어 문학을 읽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에요.
한국 퀴어 소설
박상영 — 현재 한국 퀴어 소설의 중심
박상영은 게이 남성의 일상, 사랑, 정체성을 유머와 감수성 있는 문체로 그리는 작가예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여기서 시작하면 돼요.
《대도시의 사랑법》 (창비, 2019)

게이 정체성을 가진 '영'의 사랑과 이별, 사회와의 관계를 담은 연작소설이에요. 아웃팅, 혐오, 데이트 폭력 같은 현실적인 이슈를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과하게 무겁지 않은 게 특징이에요. 2019년 젊은작가상 대상, 2022년 부커상 후보, 2023년 더블린 문학상 후보까지 오른 작품이에요.
영화(넷플릭스)와 드라마(티빙)로도 볼 수 있어서, 책과 함께 보기 좋아요. 이미 봤다면 책에서 영화가 담지 못한 내면을 더 읽을 수 있어요.
어디서 구해요?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서점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문학동네, 2018)
박상영의 첫 소설집이에요. 2016년 문학동네신인상 수상작을 포함한 단편들로, 퀴어 청춘의 사랑과 고독을 경쾌한 문체로 그렸어요. 《대도시의 사랑법》보다 더 가볍고 유머러스해서, 입문용으로 딱이에요. 박상영 세계의 출발점이기도 해요.
어디서 구해요? 알라딘, 교보문고 등 주요 서점
김봉곤 —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어요
김봉곤은 대한민국 주류 문단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소설가로, 게이 남성의 관계와 일상을 자전적 시선으로 그렸어요. 2020년 소설 속에 실제 인물의 사생활을 무단으로 인용한 것이 밝혀져 사과하고 젊은작가상을 반납했고, 이후 기존 작품들이 판매 중지됐어요. 현재 서점에서 구매는 어렵지만, 도서관에서는 열람할 수 있어요.
《여름, 스피드》 (문학동네, 2018)
첫 소설집이에요. 게이 남성의 여름, 속도, 관계에 대한 여섯 편의 단편이 담겨 있어요. 특히 표제작 「여름, 스피드」는 퀴어 문학계에서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어요.
어디서 읽어요? 가까운 공공 도서관
《시절과 기분》 (창비, 2020)
두 번째 소설집으로, 2018–2019년 사이 발표한 단편 6편이 수록돼 있어요. 2020년 논란으로 판매 중지된 상태예요.
어디서 읽어요? 가까운 공공 도서관
해외 번역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도서출판 잔, 2019)

원작: Call Me by Your Name, André Aciman (2007). 번역: 정지현.
1983년 이탈리아 북부, 17세 Elio와 아버지의 연구 보조원 Oliver의 여름 이야기예요. Luca Guadagnino 감독의 영화(2017)로 더 유명하지만, 소설이 내면 심리를 훨씬 깊이 다뤄요. 영화를 보고 더 읽고 싶어졌다면, 소설을 집어들 차례예요. Elio의 독백은 영화가 담지 못한 결을 전해줘요.
어디서 구해요? 알라딘, 교보문고 등 주요 서점 (구판 제목: 《그해, 여름 손님》)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시공사)
원작: 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 Ocean Vuong (2019). 번역: 김목인.
베트남계 미국 시인 오션 브엉의 자전적 소설이에요. 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베트남 이민 가족의 역사, 퀴어 정체성, 첫사랑, 약물 중독까지 복잡한 삶의 결을 시적인 문장으로 그려요. 번역도 유려한 데다, 이민자·퀴어·노동 계급의 교차점에서 쓴 작품이라 읽을수록 무게감이 있어요.
어디서 구해요? 교보문고, 알라딘 등 주요 서점
《싱글 맨》 (창비, 2017)
원작: A Single Man, Christopher Isherwood (1964). 번역: 조동섭.
하루의 이야기예요. 연인과 사별한 게이 중년 영문학 교수 George가 그 하루를 살아내는 이야기예요. 톰 포드 감독의 동명 영화(2009) 원작이기도 해요. 단 하루의 시간 안에 고독과 상실, 그리고 삶의 이유를 담아낸 퀴어 소설의 고전이에요. 게이 남성의 노년과 상실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이 드물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작품이 더 특별하게 느껴져요.
어디서 구해요? 알라딘, 교보문고 등 주요 서점
웹툰·만화
BL 장르 전체와는 조금 달라요. 여기서는 게이 남성의 정체성과 현실을 실제적으로 다루는 작품 위주로 골랐어요.
《아우의 남편》 타가메 겐고로 (길찾기)

일본에서 월간 액션(月刊アクション)에 연재됐던 만화예요. 에로틱 게이 만화로 유명한 타가메 겐고로가 전혀 다른 결의 가족 드라마를 그린 작품이에요. 일찍 죽은 쌍둥이 동생의 남편이었던 캐나다 남성 마이크를 맞이한 야이치와 딸 카나의 이야기예요. 게이 커플의 삶을 가족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그렸어요. 2015년 일본 미디어 예술제 상, 2018년 아이스너상을 수상했고, NHK 드라마로도 제작됐어요.
어디서 읽어요? 레진코믹스 (한국어 서비스 중), 서점에서 단행본(1–5권 완결) 구매 가능
《어서오세요 305호에》 와난 (완결)
다양한 성 소수자 캐릭터가 한 아파트에 모여 사는 일상 드라마예요. FTM 트랜스젠더, 게이 커플, 레즈비언 등 퀴어 다양성을 보여주면서 현실적인 소외와 커밍아웃 문제를 유머러스하게 다뤄요. 비극 없이 일상의 시선으로 퀴어 삶을 그린 작품이라 입문용으로 추천해요. 과거 다음 웹툰에서 연재됐으며, 현재 열람 가능 여부는 직접 확인이 필요해요.
《커밍아웃 퍼플》 마데라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과정, 혐오 발언, 젊은 연인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린 웹툰이에요. 미국식 그림체라 국내 웹툰과 다른 느낌이에요. 커밍아웃 과정을 직접 다루는 웹툰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특이한 작품이에요.
레진코믹스에서 찾아볼 만한 작품들
레진코믹스는 성인 BL 웹툰 플랫폼으로 유명한데, 그 안에서도 단순 판타지 로맨스와 구분되는 현실적인 게이 서사 작품들이 있어요. 우리사이느은 같은 작품이 그 예인데, 레진코믹스 BL 카테고리에서 "현대물" 필터로 선별하면 찾을 수 있어요.
단, 레진코믹스는 성인 인증이 필요한 플랫폼이에요.
에세이·논픽션
무지개책갈피 앤솔러지 시리즈
무지개책갈피는 퀴어 커뮤니티 작가들이 직접 엮는 독립출판 앤솔러지예요. 주류 출판에서 다루기 어려운 서사들을 직접 담아요.
- 《퀴어 아포칼립스 소설집: 무너진 세계의 우리는》 (2019) — 퀴어 SF 단편들
-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2021, 돌베개) — YA 퀴어 로맨스 단편집
어디서 구해요? rainbowbookmark.com 및 독립서점
박상영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의 에세이집이에요. 퀴어 남성의 삶, 음식, 관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소설보다 더 직접적으로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어디서 구해요? 알라딘, 교보문고 등 주요 서점
퀴어 문학을 더 찾고 싶을 때 — 서점과 공간
무지개책갈피 (온라인)
rainbowbookmark.com에 있는 국내 퀴어 문학 아카이브예요. 작품 DB, 앤솔러지 출판, 추천 목록을 제공하고, 게이·레즈비언·트랜스젠더 서사별로 분류돼 있어요. 퀴어 문학 탐색의 출발점으로 쓰기 좋아요.
책방꼴 (서울 마포구)

언니네트워크가 운영하는 퀴어·페미니스트 책방이에요.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5나길 18, 홍대입구역 1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거리예요. 퀴어, 페미니즘, 동물권, 장애인 인권 등 사회적 소수자 관련 도서를 전문으로 다뤄요. 성 소수자 섹션이 별도로 있어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막막할 때 찾아가기 좋은 곳이에요.
정기 독서 모임도 운영하고 있어요. 영업시간과 일정은 인스타그램 @ccol____ 에서 확인해야 해요. 자주 변동이 있어요.
온라인 독서 모임
퀴어 문학 관련 독서 모임을 찾고 있다면 다음을 확인해보세요.
- 트레바리(trevari.co.kr): 퀴어 문학 테마 클럽이 비정기적으로 열려요. 시즌마다 달라지니 검색해보세요.
- 그믐(gmeum.com): 온라인 북클럽 서비스로, 퀴어 문학 관련 모임이 열리는 경우가 있어요.
실용 팁: 어디서 구매하고 읽어요?
서점
- 알라딘: 중고 도서도 저렴하게 구매 가능해요. 오프라인 매장도 있어요.
- 교보문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미리 내용을 확인하고 구매하기 좋아요.
- 예스24: 전자책 라이브러리 서비스로 대여도 가능해요.
전자책·웹툰
- 리디북스: 퀴어 소설 전자책도 다양하게 있어요. 앱으로 어디서든 읽을 수 있어요.
- 레진코믹스: BL 포함 퀴어 웹툰. 성인 인증 필요.
- 다음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 무료 열람 가능.
도서관
김봉곤 작품처럼 절판된 책은 공공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어요. 국립중앙도서관 통합검색(nl.go.kr/NL/search)에서 소장 도서관을 확인할 수 있어요.
마무리
처음 퀴어 문학을 접한다면,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부터 시작해보세요. 가볍게 읽히면서도 생각이 남는 작품들이에요.
웹툰이 더 편하다면 《아우의 남편》을 추천해요. 의외로 담담하고 따뜻한 이야기예요.
해외 소설로 넓혀보고 싶다면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소설판을 골라보세요. 영화를 이미 봤다면, 소설이 주는 감각이 전혀 다르다는 걸 금방 알게 될 거예요.
좋은 퀴어 문학은 "우리 이야기"를 문자로 기록한 거예요. 읽다 보면 어딘가에서 "이게 나였구나"라는 순간이 와요. 그 감각이 생각보다 힘이 세요. 한 권만 골라서 시작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