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1~2줄 같음
33## 개요
44
55**종로 게이 공간**은 서울 종로3가역 북쪽 낙원동 일대에서 게이 남성이 모이는 장소들을
6+이른다.[^lee-2007] 게이 남성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kim-2018]
7+[[게이 공간/이태원|이태원]]의 첫 [[게이바|게이클럽]]이 1995년에 문을 연 것과 비교하면 20년 가까이 앞선다.[^ilyosisa-2012]
6−이릅니다.[^lee-2007] 게이 남성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입니다.[^kim-2018]
7−[[게이 공간/이태원|이태원]]의 첫 [[게이바|게이클럽]]이 1995년에 문을 연 것과 비교하면 20년 가까이 앞섭니다.[^ilyosisa-2012]
88
99## 위치
1010
11+중심은 종로3가역 북쪽,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사이의 낙원동 일대다. 서쪽으로 인사동, 동쪽으로
12+종묘가 있다.[^lee-2007] 실제로는 종로3가역을 둘러싼 낙원동, 돈의동, 묘동, 익선동에 게이
13+업소가 흩어져 있다.[^lee-2020] 게이바가 모인 골목 옆으로 돈화문로의 포장마차 거리가
14+이어진다.[^hankyung-2023]
11−중심은 종로3가역 북쪽,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사이의 낙원동 일대입니다. 서쪽으로 인사동, 동쪽으로
12−종묘가 있습니다.[^lee-2007] 실제로는 종로3가역을 둘러싼 낙원동, 돈의동, 묘동, 익선동에 게이
13−업소가 흩어져 있습니다.[^lee-2020] 게이바가 모인 골목 옆으로 돈화문로의 포장마차 거리가
14−이어집니다.[^hankyung-2023]
1515
1616
1717
18~18줄 같음
1919
2020### 1970년대 이전
2121
22+서울의 게이 남성들이 일찍부터 모인 곳은 극장이었다. 1950년대부터 게이들이 모인 동네는
23+대부분 극장을 낀 번화가였고,[^lee-2007] 극장 주변에 게이가 드나드는 술집이 생겼다.
24+시기마다 중심이 된 극장은 이렇다.[^kim-2018]
22−서울의 게이 남성들이 일찍부터 모인 곳은 극장이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게이들이 모인 동네는
23−대부분 극장을 낀 번화가였고,[^lee-2007] 극장 주변에 게이가 드나드는 술집이 생겼습니다.
24−시기마다 중심이 된 극장은 이렇습니다.[^kim-2018]
2525
2626| 시기 | 극장 |
2727| --- | --- |
28~28줄 같음
2929| 1960년대 | 신당동 광무극장 |
3030| 1970년대 | 종로3가 파고다극장 |
3131
32+종로보다 먼저 이름을 알린 곳은 신당동이다. 신당동에는 1960년대부터 게이들이 꾸준히
33+모였다.[^lee-2007]
32−종로보다 먼저 이름을 알린 곳은 신당동입니다. 신당동에는 1960년대부터 게이들이 꾸준히
33−모였습니다.[^lee-2007]
3434
35+종로3가 뒷골목에는 `종삼`이라고 불린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다. 서울시는 1968년 9월 27일
36+정화사업을 시작했고, 10월 5일 새벽 철거로 작전을 끝냈다.[^asiae-2013] 이날 마지막 72명이
37+보호소로 옮겨지면서 250여 가구, 1,400여 명이 살던 집결지가 비었다.[^seoul-2013]
35−종로3가 뒷골목에는 `종삼`이라고 불린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1968년 9월 27일
36−정화사업을 시작했고, 10월 5일 새벽 철거로 작전을 끝냈습니다.[^asiae-2013] 이날 마지막 72명이
37−보호소로 옮겨지면서 250여 가구, 1,400여 명이 살던 집결지가 비었습니다.[^seoul-2013]
3838
39+이 철거는 비워진 자리에 게이 업소가 들어설 수 있게 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철거 뒤에도
40+이 일대에서는 겸업 성매매가 이어졌고, 그 틈에 게이바가 하나둘 생겼다.[^kim-2018] 게이바가
41+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lee-2007]
39−이 철거는 비워진 자리에 게이 업소가 들어설 수 있게 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철거 뒤에도
40−이 일대에서는 겸업 성매매가 이어졌고, 그 틈에 게이바가 하나둘 생겼습니다.[^kim-2018] 게이바가
41−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1970년대 후반입니다.[^lee-2007]
4242
4343### 1970년대
4444
45+파고다극장은 탑골공원 동쪽 문 바로 앞에 있던 극장이다. 1960년대 초에 세워져 1966년에는
45−파고다극장은 탑골공원 동쪽 문 바로 앞에 있던 극장입니다. 1960년대 초에 세워져 1966년에는
4646서울의 3대 극장으로 꼽혔다는 글이 있고,[^kim-2018] 개관을 1970년대 중반으로 적은 연구도
47+있다.[^lee-2007] 정확한 개관 연도는 자료마다 다르다.
47−있습니다.[^lee-2007] 정확한 개관 연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4848
49+1960년대 말부터 이 극장은 두 편을 이어 트는 동시상영관이 됐다. 표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머물
50+수 있었고, 1970년대에는 게이 남성들의 대표적인 만남 장소가 됐다. 게이들 사이에서는
51+`P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다.[^kim-2018]
49−1960년대 말부터 이 극장은 두 편을 이어 트는 동시상영관이 됐습니다. 표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머물
50−수 있었고, 1970년대에는 게이 남성들의 대표적인 만남 장소가 됐습니다. 게이들 사이에서는
51−`P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통했습니다.[^kim-2018]
5252
53+극장을 중심으로 게이바가 생겼다. 1974년 창덕궁 앞에 문을 연 **「심」**은 종로 지역의 첫
54+게이바로 기록돼 있고, 1978년 「갈등」, 1979년 「갈」이 뒤를 이었다.[^kim-2018]
53−극장을 중심으로 게이바가 생겼습니다. 1974년 창덕궁 앞에 문을 연 **「심」**은 종로 지역의 첫
54−게이바로 기록돼 있고, 1978년 「갈등」, 1979년 「갈」이 뒤를 이었습니다.[^kim-2018]
5555
5656### 1980년대
5757
58581982년 1월 야간통행금지가 풀린 뒤 게이바는 크게 늘어, 1980년대 이 일대에는 50\~60곳이
59+영업했다.[^kim-2018]
59−영업했습니다.[^kim-2018]
6060
61+1980년대에는 탑골공원 일대도 만남 장소였다. 밤에 탑골공원 주변을 서성이며 상대를 찾는
62+사람을 **탑돌이**라고 불렀다.[^lee-2007] ~~불공을 드리러 돈 것은 아니다.~~
61−1980년대에는 탑골공원 일대도 만남 장소였습니다. 밤에 탑골공원 주변을 서성이며 상대를 찾는
62−사람을 **탑돌이**라고 불렀습니다.[^lee-2007]
6363
6464과 그 둘레, 1985년 5월 21일. 사진: 서울역사아카이브, 공공누리 제1유형")
6565
66+단속도 있었다. 1980년대 종로3가의 한 게이바 주인은 "무슨 호모 바냐" 하는 소리를 들으며
67+종로경찰서에 "밥먹듯이" 드나들어야 했다고 회고했다.[^kim-2018]
66−단속도 있었습니다. 1980년대 종로3가의 한 게이바 주인은 "무슨 호모 바냐" 하는 소리를 들으며
67−종로경찰서에 "밥먹듯이" 드나들어야 했다고 회고했습니다.[^kim-2018]
6868
6969### 1990년대
7070
71+1990년 1월 1일부터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이 다시 제한됐다. 관광특구는 새벽 2시, 그 밖의 지역은
72+자정까지만 영업할 수 있었고, 게이 업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제한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73+자정 넘어 몰래 영업하는 게이바가 많았다. 광고에 "매일밤 11:30-12:00 봉고대기"라고 적어
74+자정 이후에도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린 가게도 있었다.[^kim-2018] ~~몰래치고는 꽤 공개적이었다.~~
71−1990년 1월 1일부터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이 다시 제한됐습니다. 관광특구는 새벽 2시, 그 밖의 지역은
72−자정까지만 영업할 수 있었고, 게이 업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한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73−자정 넘어 몰래 영업하는 게이바가 많았습니다. 광고에 "매일밤 11:30-12:00 봉고대기"라고 적어
74−자정 이후에도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린 가게도 있었습니다.[^kim-2018]
7575
76761993\~1994년에 신당동의 성동극장이 문을 닫자 그곳의 게이바는 줄거나 업종을 바꿨고, 그곳에
77+모이던 사람들이 낙원동으로 옮겨 오기 시작했다.[^lee-2007]
77−모이던 사람들이 낙원동으로 옮겨 오기 시작했습니다.[^lee-2007]
7878
79+같은 시기 PC통신과 인터넷에서 게이 모임이 빠르게 늘었다. 1996년 이후 온라인 모임의 대규모
80+정기모임은 주로 이태원에서 열렸다.[^lee-2007]
79−같은 시기 PC통신과 인터넷에서 게이 모임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1996년 이후 온라인 모임의 대규모
80−정기모임은 주로 이태원에서 열렸습니다.[^lee-2007]
8181
82+심야영업 제한은 두 번에 나눠 풀렸다. 1998년 9월 15일 식당과 다방 같은 일반·휴게음식점이
82−심야영업 제한은 두 번에 나눠 풀렸습니다. 1998년 9월 15일 식당과 다방 같은 일반·휴게음식점이
8383먼저 풀렸고,[^hankook-1998-09-15] 단란주점과 유흥주점은 1999년 3월 1일부터 영업시간이
84+자유로워졌다.[^hankook-1999-02-27]
84−자유로워졌습니다.[^hankook-1999-02-27]
8585
8686### 2000년대
8787
88+파고다극장은 2000년대 초 문을 닫았다. 연도는 자료에 따라 2001년,[^kim-2018] 2002년[^lee-2007]으로
89+적힌다. 문을 닫기 전까지 극장 주변에는 게이바를 비롯한 게이 업소가 60\~80곳 있었다.[^lee-2007]
88−파고다극장은 2000년대 초 문을 닫았습니다. 연도는 자료에 따라 2001년,[^kim-2018] 2002년[^lee-2007]으로
89−적힙니다. 문을 닫기 전까지 극장 주변에는 게이바를 비롯한 게이 업소가 60\~80곳 있었습니다.[^lee-2007]
9090
91+만남의 정보를 온라인에서 얻게 되면서 만남 장소로서 극장의 몫은 줄었다. 그런데 낙원동 골목은
92+오히려 더 붐볐다. 2000년대 들어 이태원의 업소가 줄어드는 사이 업소는 낙원동으로 몰렸고,
93+2005년 무렵 낙원동 일대의 게이 업소는 게이바와 DVD방을 합쳐 약 85곳이었다.[^lee-2007]
91−만남의 정보를 온라인에서 얻게 되면서 만남 장소로서 극장의 몫은 줄었습니다. 그런데 낙원동 골목은
92−오히려 더 붐볐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이태원의 업소가 줄어드는 사이 업소는 낙원동으로 몰렸고,
93−2005년 무렵 낙원동 일대의 게이 업소는 게이바와 DVD방을 합쳐 약 85곳이었습니다.[^lee-2007]
9494
95+돈화문로 포장마차 거리는 2009년 서울시가 종로 대로변의 노점을 옮긴 뒤 생겼다. 종로3가역
96+5번 출구에서 3번 출구까지 약 200m다.[^hankyung-2023] 그해 11월 서울시는 대로변 노점 100여
97+개를 낙원동에 만드는 거리로 연말까지 옮긴다고 밝혔다.[^etoday-2009]
95−돈화문로 포장마차 거리는 2009년 서울시가 종로 대로변의 노점을 옮긴 뒤 생겼습니다. 종로3가역
96−5번 출구에서 3번 출구까지 약 200m입니다.[^hankyung-2023] 그해 11월 서울시는 대로변 노점 100여
97−개를 낙원동에 만드는 거리로 연말까지 옮긴다고 밝혔습니다.[^etoday-2009]
9898
9999## 이용자층
100100
1011011996년 이후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이태원으로, 윗세대는 종로로 모이는 흐름이
102+생겼다.[^lee-2007]
102−생겼습니다.[^lee-2007]
103103
104+포장마차 거리는 게이들이 모이는 자리로 알려졌다. 2016년 5월 자정 무렵 종로3가역 6번 출구 앞
105+포장마차는 20\~30대 남성 손님으로 가득했다.[^herald-2016] 2019년 조사에서도 자정이 넘으면
106+포장마차 손님 대부분이 게이 남성으로 바뀌었다.[^lee-2020]
104−포장마차 거리는 게이들이 모이는 자리로 알려졌습니다. 2016년 5월 자정 무렵 종로3가역 6번 출구 앞
105−포장마차는 20\~30대 남성 손님으로 가득했습니다.[^herald-2016] 2019년 조사에서도 자정이 넘으면
106−포장마차 손님 대부분이 게이 남성으로 바뀌었습니다.[^lee-2020]
107107
108+바로 옆 익선동이 뜬 뒤로는 게이가 아닌 손님도 많이 찾는 곳이 됐다. 이성애자 손님이 늘면서
109+전처럼 편하게 머물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asiae-2019] 지금은 포장마차 대부분을
110+이성애자 손님이 채우고, 게이 손님은 일부 가게만 찾는다.[^lee-2020]
108−바로 옆 익선동이 뜬 뒤로는 게이가 아닌 손님도 많이 찾는 곳이 됐습니다. 이성애자 손님이 늘면서
109−전처럼 편하게 머물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asiae-2019] 지금은 포장마차 대부분을
110−이성애자 손님이 채우고, 게이 손님은 일부 가게만 찾습니다.[^lee-2020]
111111
112112
113113
114114## 오해
115115
116116종로 게이 역사로 흔히 옮겨지는 이야기 가운데 기록과 어긋나거나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
117+것들이다.
117−것들입니다.
118118
119+- 일제강점기에 게이들이 모이는 술집과 양복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119−- 일제강점기에 게이들이 모이는 술집과 양복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120120- 1950년대 게이들이 명동의 양장점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기록에 남은 곳은 극장과
121+ 다방이다.[^kim-2018]
122+- 1960년대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청계천 변을 거쳐 종로로 옮겨 왔다는 경로가 있다. 을지로
121− 다방입니다.[^kim-2018]
122−- 1960년대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청계천 변을 거쳐 종로로 옮겨 왔다는 경로가 있습니다. 을지로
123123 인쇄소 골목에 게이바 「아담」이 있었다는 기록은 있지만,[^buddy-1998] 청계천 변을 거쳤다는
124+ 기록은 없다.
125+- 「심」이 한국 최초의 게이바라는 이야기가 있다. 1960년대 을지로의 「아담」을 적은 1998년
126+ 잡지 기사가 있어, 「심」은 종로 지역의 첫 게이바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buddy-1998]
124− 기록은 없습니다.
125−- 「심」이 한국 최초의 게이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0년대 을지로의 「아담」을 적은 1998년
126− 잡지 기사가 있어, 「심」은 종로 지역의 첫 게이바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buddy-1998]
127127- 파고다극장 근처에 있었다는 특정 게이바의 이름, 극장을 잘못 찾아간 사람들의 일화는 기록으로
128+ 확인되지 않는다.
129+- 온라인 게이 모임의 첫 정기모임에 1천 명이 모였다는 이야기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130+- 심야영업 제한이 1998년 8월에 풀렸다는 서술이 있다. 1998년 6월 정부는 8월 1일부터 전면
128− 확인되지 않습니다.
129−- 온라인 게이 모임의 첫 정기모임에 1천 명이 모였다는 이야기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130−- 심야영업 제한이 1998년 8월에 풀렸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1998년 6월 정부는 8월 1일부터 전면
131131 해제한다고 발표했지만,[^maeil-1998] 실제로는 음식점이 9월 15일, 유흥업소가 이듬해 3월 1일에
132+ 풀렸다.[^hankook-1998-09-15]
132− 풀렸습니다.[^hankook-1998-09-15]
133133- 이태원이 뜬 뒤 종로가 쇠퇴했다는 서술이 있지만, 기록은 2000년대 초 낙원동이 오히려 커졌다고
134+ 본다.[^lee-2007]
134− 봅니다.[^lee-2007]
135135
136136[^lee-2007]: 이서진, [「게이 남성의 장소 형성: 종로구 낙원동을 사례로」](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89782/1/02.pdf), 『지리학논총』 49호, 2007.
137+[^kim-2018]: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https://chingusai.net/xe/newsletter/556518), 『친구사이 소식지』 99호, 2018년 9월 30일. 『주간경향』, 『BUDDY』, 『보릿자루』, 경향신문 등의 기사를 인용한 글이다.
137−[^kim-2018]: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https://chingusai.net/xe/newsletter/556518), 『친구사이 소식지』 99호, 2018년 9월 30일. 『주간경향』, 『BUDDY』, 『보릿자루』, 경향신문 등의 기사를 인용한 글입니다.
138138[^ilyosisa-2012]: 일요시사, [「\[현장르포\] 게이들의 '놀이터' 이태원을 가다」](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297), 2012년 1월 27일.
139139[^lee-2020]: 이창환, [「지역 상권 활성화에 따른 종로3가 게이 공간의 변화와 대응」](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657364), 『한국지역지리학회지』 26권 4호, 2020.
140140[^hankyung-2023]: 한국경제,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초여름, 청춘들을 위한 종로3가 포차거리\[MZ 공간 트렌드\]」](https://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2306215586b), 2023년 6월 25일.
141~161줄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