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 개요 **게이 공간**은 게이 남성이 모이는 업소와 그 업소들이 모인 거리를 이른다.[^lee-2007] 술을 파는 [[게이바]]와 술이 아닌 것을 파는 [[찜방]], DVD방은 `게이 업소`라는 말로 함께 묶는다.[^lee-2007] 1996년 서울에만 게이바가 70여 곳 있었고, 탑골공원 뒤 낙원동과 이태원에 몰려 있었다.[^hankook-1996] ## 역사 게이 남성들이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관계망을 이룬 것은 1960년대 후반으로 보인다. 이 관계망은 1980년대 후반 크게 불어났다. 언론이 종로3가 파고다극장을 동성애자가 모이는 곳으로 보도한 것이 오히려 커뮤니티를 키운 계기가 됐다.[^lim-2025] 초기에는 종로와 신당동 일대의 극장, 사우나, 술집이 중심이었다. 이곳에서는 작은 친목 모임이 이어졌고, 만남이 오래가는 연애로 이어지기도 했다.[^lim-2025] 서울에서 게이 남성을 주된 손님으로 받는 업소는 종로에서 1970년대부터, 이태원에서 1990년대부터 생기기 시작했다.[^kim-lee-2024] 2000년대에는 [[게이 커뮤니티|온라인 커뮤니티]]의 모임이 이태원에서 주로 열리면서 종로는 윗세대, 이태원은 젊은 세대로 갈리기도 했다.[^lee-2007] ## [[게이바|업소]] 자세한 내용은 [[게이바]], [[찜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게이바는 게이 남성을 주된 손님으로 받는 술집을 두루 이르는 말로, 작은 바와 소주방, 노래를 부르는 가라오케, 춤을 추는 클럽이 모두 여기에 든다.[^gk-boards] 성관계를 목적으로 찾는 게이 전용 휴게텔은 찜방이라고 부른다.[^chingusai-jjimbang] ## 지역 ### [[게이 공간/종로|종로]] 자세한 내용은 [[게이 공간/종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종로의 게이 공간은 종로3가역 북쪽 낙원동 일대에 있다.[^lee-2007] 게이 남성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kim-2018] 2005년 무렵 낙원동 일대의 게이 업소는 게이바와 DVD방을 합쳐 약 85곳이었다.[^lee-2007] ### [[게이 공간/이태원|이태원]] 자세한 내용은 [[게이 공간/이태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태원소방서 뒤편 언덕 골목에 게이클럽이 모여 있고,[^maeng-2024] 이 골목을 흔히 **게이힐**이라고 부른다.[^ohmy-2024] 게이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itj-2012] 1995년과 1996년 파슈와 스파르타쿠스가 문을 열며 클럽 시대가 시작됐다.[^ilyosisa-2012][^term-spartacus] ### 지방 서울 밖의 게이 공간은 규모가 작고 사람들이 서로 촘촘히 이어져 있다. 2023년 12월 기준으로 제주에는 게이 술집 여덟 곳이 제주시 탑동과 칠성로에 가까이 모여 있었다. 주말에는 하루 50명 안팎의 손님이 이 술집들을 찾는다고 한다.[^shin-2025] 술집들은 주로 찾는 손님의 나이대로 나뉜다고 연구 참여자들은 말하지만, 연구자가 지켜본 바로는 그 기준이 딱 지켜지지는 않았다.[^shin-2025] 제주에는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어 `궨당`에서 나온 궨당 문화가 있다. 한 연구 참여자는 세 다리만 건너면 모두 친척이고 서로 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shin-2025] 그래서 [[게이 데이팅 앱|데이팅 앱]]에서 먼저 묻는 말이 "도민이세요?"이고, 상대가 도민이라고 하면 만나기를 꺼리기도 한다.[^shin-2025] 여덟 곳의 술집 사이에서는 소문이 아주 빠르게 퍼져서 업주들이 서로 언행을 조심한다.[^shin-2025] 술집 사장이나 직원의 소개로 사람을 만나는 손님도 있다. 한 참여자는 소개해 준 사람이 상대의 생김새와 나이를 어느 정도 "보증"해 주니 앱보다 편했다고 말했다.[^shin-2025] ## 오해 - 지방에는 게이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 제주에만 해도 2023년 기준 게이 술집 여덟 곳이 영업하고 있었다.[^shin-2025] [^lee-2007]: 이서진, [「게이 남성의 장소 형성: 종로구 낙원동을 사례로」](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89782/1/02.pdf), 『지리학논총』 49호, 2007. [^hankook-1996]: 한국일보, [「게이바 서울만 70여곳/이태원·낙원동 일대 그들만의 '천국'」](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611090075394980), 1996년 11월 9일. [^lim-2025]: 임동현, [「미디어의 진화와 게이 하위문화의 구조변동: 집단 범주화 문제를 중심으로」](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172486), 『언론정보연구』 62권 1호, 2025. [^kim-lee-2024]: 김대현·이유나, [「게이 남성 관계・돌봄 실천의 조건: 첫 세대 비(이성애)혼 게이커뮤니티의 명암」](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106403), 『가족과 커뮤니티』 10집, 2024. [^gk-boards]: 게이코리아, [업소 게시판 목록](https://www.gaykorea.net/) (BAR, 주점ㆍ소주방, 가라오케, CLUB), 2026년 9월 22일 기준. [^chingusai-jjimbang]: 친구사이 용어사전, [「찜방」](https://chingusai.net/xe/term/116323), 2010년 12월 7일. [^kim-2018]: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https://chingusai.net/xe/newsletter/556518), 『친구사이 소식지』 99호, 2018년 9월 30일. 『주간경향』, 『BUDDY』, 『보릿자루』 등의 기사를 인용한 글이다. [^maeng-2024]: 맹휘, [「밤의 가면: 이태원 게이힐과 드랙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217440/1/000000183508.pdf),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4. [^ohmy-2024]: 오마이스타, [「이태원 '게이힐'에 울려 퍼진 르세라핌 노래, 반가웠습니다」](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081589), 2024년 11월 24일. [^itj-2012]: IT기자클럽, [「나는 나일뿐, 이태원의 게이바」](https://itjournalist.org/archives/738), 2012년 8월 22일. [^ilyosisa-2012]: 일요시사, [「\[현장르포\] 게이들의 '놀이터' 이태원을 가다」](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297), 2012년 1월 27일. [^term-spartacus]: 친구사이 LGBT 용어사전, [「스파르타쿠스」](https://chingusai.net/xe/?document_srl=116308&mid=term), 2010년 12월 7일. [^shin-2025]: 신경준, [「섬-소수자의 연결된 삶 만들기: 제주시 게이 술집의 사례를 통하여」](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175117), 『지역과 세계』 49권 1호, 2025. ## 관련 문서 - [[게이]] - [[게이/문화]] - [[게이바]] - [[찜방]] - [[게이 공간/종로]] - [[게이 공간/이태원]] [[분류:게이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