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이태원 게이 공간의 역사**는 미군기지 옆 유흥가였던 이태원에 게이바가 들어서고, 이태원소방서 뒤편 언덕 골목에 게이클럽이 모이기까지의 과정입니다.[^maeng-2024] 이 골목은 흔히 **게이힐**이나 **호모힐**이라고 부릅니다. 게이클럽이 모인 언덕길이라는 뜻의 속칭입니다.[^ohmy-2024] 게이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90년대 중반입니다.[^itj-2012] 1970년대에 자리 잡은 [[종로 게이 공간의 역사|종로]]보다 한 세대 늦습니다. 이곳을 찾은 젊은 세대가 거친 온라인 모임의 변천은 [한국 게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변천](/wiki/korean-gay-online-communities)에 정리돼 있습니다. ## 위치 이태원역에서 이태원소방서 쪽으로 가다 뒤편 언덕으로 오르는 골목, 우사단로12길 일대입니다.[^nownews-2017] 바로 옆 우사단로14길은 **후커힐**, 그 너머 우사단로10길은 이슬람사원이 있는 이슬람 언덕입니다.[^nownews-2017] 게이힐과 후커힐은 10m쯤 떨어진 나란한 골목이라, 두 길의 역사는 따로 떼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maeng-2024] ## 역사 ### 1990년대 이전 이태원의 밤거리는 미군기지에서 시작됐습니다. 1945년 9월 미군 제24사단이 용산의 일본군 기지를 넘겨받았고, 한국전쟁 뒤 용산기지 옆 이태원에 기지촌이 생겼습니다. 이태원은 미군을 상대하는 유흥업소가 모인 중심지가 됐고, 후커힐은 그 가운데 성매매가 이뤄지던 거리였습니다. 소방서 골목에는 외국인만 드나들 수 있는 클럽들이 들어섰습니다.[^maeng-2024] 이 시기의 기지촌에는 여장을 한 남성도 일했습니다. 1970년대 이태원에서 쓰인 `게이`라는 말은 지금의 게이 남성보다는 여장을 하고 남성과 관계하는 사람을 가리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는 봅니다.[^maeng-2024] ### 1990년대 1990년대 들어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인의 소비력이 커지면서 미군이 상권에 미치는 힘이 줄었고, 후커힐의 업소들도 한국 남성을 주된 손님으로 받기 시작했습니다.[^maeng-2024] 1997년 9월 이태원은 관광특구로 지정됐습니다.[^gukje-2026] 이태원의 첫 게이바는 1995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첫 가게로 `터널`을 꼽는 기사[^itj-2012][^nownews-2017]와 그해 2월 무렵 연 `파슈`를 꼽는 기사[^ilyosisa-2012]가 엇갈립니다. 1996년에는 춤추는 클럽 형태의 **스파르타쿠스**가 생겼습니다. 그전까지 서울의 게이 업소는 종로와 신당동에 모여 있었고, 대부분 단란주점 형식이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에 20대 초반 손님이 몰리면서 이태원은 새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ilyosisa-2012] 1996년 11월 신문은 서울의 게이바를 70여 곳으로 헤아리며 이태원과 낙원동 일대에 몰려 있다고 적었습니다. 해밀턴호텔 맞은편 골목 지하의 한 클럽은 60평 남짓한 홀 가운데 바가 있고 입구 옆에 춤출 무대가 있었습니다. 소방서 뒤편 골목 지하의 게이바에는 외국인 손님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hankook-1996] 게이힐 골목의 첫 게이바는 **트랜스**입니다. 월세가 싸서 이 가게를 중심으로 주변에 바와 클럽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트랜스는 원래 평범한 게이바였는데, 직원들이 재미로 여장을 하고 작은 무대에서 립싱크 쇼를 하던 것이 반응을 얻어 정기 드랙쇼가 됐습니다.[^maeng-2024] 드랙쇼는 남성이 과장된 여성의 모습으로 꾸미고 노래나 춤을 선보이는 공연입니다. 트랜스의 개업 연도는 자료마다 1995년, 1996년, 1997년으로 다릅니다.[^uos-2024][^ilyosisa-2012][^maeng-2024] 1996년 11월 기사에 이미 이름이 나오므로 1997년은 맞지 않습니다.[^hankook-1996] 같은 시기 명동, 신당동, 종로에 흩어져 있던 게이바도 이태원으로 옮겨 오기 시작했습니다.[^maeng-2024] 이태원에 게이가 모인 까닭을 두고 연구는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던 동네의 성격, 1990년대 이후 소방서 골목에 몰린 업소, 온라인 모임을 통해 이곳을 찾은 젊은 세대를 꼽습니다.[^han-2013] ### 2000년대 2000년대 초에는 게이클럽이 서울 클럽 문화의 앞자리에 있었습니다. 강남과 홍대에 클럽이 드물던 때라, 이태원의 게이클럽 `G-Spot`에는 이성애자 손님과 연예인도 드나들었습니다. 2001년 3월 6호선 이태원역이 문을 열었습니다. 2006년 무렵 G-Spot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고 해밀턴호텔 지하에 새 클럽이 생기는 등, 클럽은 생겼다 사라지기를 거듭했습니다.[^interview-2016] 게이힐의 업소들은 이 무렵부터 옆 골목으로 자리를 넓혔습니다. 후커힐에 있던 바는 지금 트랜스젠더가 일하는 업소 위주로 남았고, 이성애자 손님을 받는 곳은 세 곳뿐이라고 2024년 연구는 적었습니다. 1990년대에 이미 이 일대에는 트랜스젠더 클럽이 성업했고, 게이바와 트랜스젠더 바가 두 골목에 섞여 자리 잡았습니다.[^maeng-2024] ### 2010년대 2012년 무렵 이태원의 게이 업소는 30여 곳이었습니다.[^ilyosisa-2012] 이 시기를 지나온 한 손님은 "예전에는 상대를 찾거나 애인을 만나러 바에 갔지만, 지금은 편하게 어울리거나 클럽에 간다"고 말했습니다.[^koreatimes-2012] 2010년대에는 클럽 밖의 파티가 커졌습니다. 서킷 파티는 게이들이 대규모로 모여 춤추는 파티 행사입니다. 한국의 첫 게이 서킷 파티는 2007년 청담동과 남산에서 열렸지만 적자로 끝났습니다.[^interview-2016] 2011년 8월에는 이태원의 한 호텔 지하 클럽에서 파티 브랜드 VELOCITY의 첫 회가 열렸고, 2013년까지 여섯 차례 이어졌습니다. 2012년 문을 연 한 클럽은 구석에 숨어 있던 DJ 부스를 크게 드러냈습니다.[^interview-2016] ### 2020년대 2020년대에는 새 클럽이 여럿 문을 열어 손님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입구에서 손님을 가려 받는 직원을 `가드`라고 부릅니다.[^maeng-2024] 케이팝을 주로 트는 클럽이 본격적으로 생겼고, 중국, 일본, 태국에서 온 관광객도 이런 클럽을 필수 코스로 찾는다고 2024년 기사는 적었습니다.[^ohmy-2024] ## 이용자층 이태원과 종로는 처음부터 쓰임이 달랐습니다. 1996년 이태원의 한 게이바 주인은 "동성애자들은 주로 낙원동에서 1차를 한 뒤 이태원의 게이바에 들렀다 3차로 여관을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hankook-1996] 손님층은 세대로 갈렸습니다. 클럽을 찾는 젊은 게이들과 종로의 바에 익숙한 윗세대 사이에 거리가 생겼습니다.[^maeng-2024] 2012년 기사도 이태원 게이바는 주로 클럽 형태이고 종로보다 개방적이며, 손님이 20대와 30대에 몰려 있다고 적었습니다.[^itj-2012] 다만 2000년 3월 업소 정보지가 헤아린 이태원 업소도 가라오케와 카페가 가장 많았고 클럽은 그다음이었습니다.[^boritjaru-2000] 이태원이 처음부터 클럽만의 동네였던 것은 아닙니다. ## 문화 종로의 게이 업소는 앉아서 대화하는 바가 중심이었습니다. 일어서서 춤추는 클럽을 즐기려면 당시에는 이태원밖에 없었습니다.[^maeng-2024] 골목의 생김새도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종로는 서울 한복판이라 게이바가 외진 골목에 있어도 다른 행인의 눈에 띄기 쉬웠습니다. 게이힐은 언덕 위까지 업소만 있어 그 길을 오르는 사람은 대부분 업소를 찾는 손님입니다. 그래서 가게 안뿐 아니라 골목에서도 스스로를 덜 숨길 수 있었습니다.[^maeng-2024] 연구는 이태원의 게이 공간을 `개방성`과 `드러내기`로, 낙원동을 폐쇄적인 공간으로 구분합니다.[^han-2013] 케이팝이 게이힐의 음악이 된 것은 2010년대 무렵입니다. 2000년대 후반 문을 연 클럽 **펄스**는 케이팝만 트는 `끼타임`을 만들었고, 이 시간이 클럽 인기의 중심이 됐습니다. 손님들이 모임을 꾸려 안무를 배우고 춤추는 영상을 SNS에 올리는 일이 흔해졌습니다.[^interview-2016] 2025년 연구는 게이클럽에서 케이팝 안무를 함께 추는 놀이가 손님들을 하나로 묶는 동시에,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에서 인종에 따른 경계를 만들기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lee-2025] ## 오해 이태원 게이 역사로 흔히 옮겨지는 이야기 가운데 기록과 어긋나거나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 1980년대부터 게이힐에 게이클럽이 생겼다는 서술. 이태원 게이바의 기록은 1995년부터 나옵니다 - 트랜스가 한국 최초의 드랙쇼 클럽이라는 이야기.[^uos-2024] 같은 무렵 이태원의 다른 업소에서도 단체 관광객을 상대로 드랙쇼를 했습니다[^maeng-2024] - 기지촌이 생긴 직후인 1960년대부터 게이들이 이태원에 모였다는 이야기. 연구자의 추정이고 기록은 없습니다 - 2001년 9·11 테러 뒤 미군이 게이힐과 후커힐 출입을 금지했다는 이야기. 한 연구에만 나오고 미군 쪽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maeng-2024]: 맹휘, [「밤의 가면: 이태원 게이힐과 드랙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217440/1/000000183508.pdf),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4. [^ohmy-2024]: 오마이스타, [「이태원 '게이힐'에 울려 퍼진 르세라핌 노래, 반가웠습니다」](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081589), 2024년 11월 24일. [^itj-2012]: IT기자클럽, [「나는 나일뿐, 이태원의 게이바」](https://itjournalist.org/archives/738), 2012년 8월 22일. [^nownews-2017]: 나우뉴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게이 힐, 후커 힐, 이슬람 언덕을 아시나요?」](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214601021), 2017년 2월 14일. [^gukje-2026]: 국제뉴스, [「용산구, 이태원관광특구 확대…'찾는 관광지'에서 '머무는 관광지'로!」](https://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75695), 2026년 1월 8일. [^ilyosisa-2012]: 일요시사, [「\[현장르포\]게이들의 '놀이터' 이태원을 가다」](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16297), 2012년 1월 27일. [^hankook-1996]: 한국일보, [「게이바 서울만 70여곳/이태원·낙원동 일대 그들만의 '천국'」](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199611090075394980), 1996년 11월 9일. [^uos-2024]: 서울시립대신문, [「'내가 표현하는 나' 경계를 넘어 세상으로 나온 드랙」](https://press.uos.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253), 2024년 5월 21일. [^han-2013]: 한유석, [「성소수자들의 공간 전유와 커뮤니티 만들기: 이태원 소방서 골목 사례 연구」](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758862), 『서울도시연구』 14권 1호, 2013. 초록. [^interview-2016]: [「이태원 게이클럽의 어제와 오늘: 클럽 Le Queen/Looking-Star 사장 임찬혁님 인터뷰」](https://chingusai.net/xe/newsletter/477856), 『친구사이 소식지』, 2016년 7월 18일. [^koreatimes-2012]: The Korea Times, [「Story of 'the hill'」](https://www.koreatimes.co.kr/lifestyle/others/20120425/story-of-the-hill), 2012년 4월 25일. [^boritjaru-2000]: 『보릿자루』 16호, 2000년 3월 15일, 95쪽. 「이태원 게이클럽의 어제와 오늘: 클럽 Le Queen/Looking-Star 사장 임찬혁님 인터뷰」, 『친구사이 소식지』, 2016년 7월 18일에서 재인용. [^lee-2025]: 이현화, [「케이팝과 소수자 공동체: 이태원 게이클럽의 커뮤니타스」](https://www.kci.go.kr/kciportal/mobile/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295835), 『비교문화연구』 31권 2호, 2025. 초록. ## 관련 문서 - [[종로 게이 공간의 역사]] - [[게이바]] - [[게이 은어]] [[분류:게이힐]] [[분류:게이 공간]] [[분류: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