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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 타오르고 사라진다 —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을 봐야 하는 이유

3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아트선재센터. 한국 최초 대규모 퀴어 미술 기관 전시, 꼭 봐야 할 작품과 관람 방법을 정리했어요.

향이 타오르고 사라진다 —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을 봐야 하는 이유

3월 20일, 아트선재센터 지하 전시장에서 불꽃 하나가 피어올랐어요.

오인환 작가의 〈Where He Meets Him in Seoul〉이에요. 바닥 위에 향 분말로 쓰인 이름들 — 이태원과 종로에 한때 존재했거나 지금도 남아있는 게이바와 클럽의 이름들. 개막일, 그 글자들에 불이 붙었어요. 연기가 올라가고 이름들이 재가 됐어요. 사라지면서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이름들이에요.

이 작품은 2001년부터 작가가 이어온 작업이에요. 서울 퀴어 공간들의 기억을 보이지 않는 언어로 새기고, 불에 태우고, 다시 다음 전시에서 새겨요. 소멸과 잔존 사이 어딘가에 이 이름들이 있어요.

이 장면을 안고서 —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 시작됐어요.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전시 전경

이 기관이 왜 이 전시를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이 열리는 곳은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아트선재센터예요. 경복궁 동쪽 골목,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현대미술 기관이에요.

이 기관이 퀴어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98년이에요. 서울 최초의 퀴어영화제를 연 곳이 바로 아트선재센터였거든요. 28년이 지난 지금, 그 기관이 한국 최초의 대규모 퀴어 미술 기관 전시를 열고 있어요. 우연한 선택이 아닌 거예요.

전시를 기획한 홍콩 선프라이드재단의 Patrick Sun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들은 한국이 매우 보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활발한 게이 커뮤니티가 있어요.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젊은 작가들에게 특히 감사하다."

한국에서 퀴어 문화는 문화 예술 영역에서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고 있어요. 동성 결혼 법적 인정은 아직이고, 차별금지법은 20년째 국회를 맴돌고 있지만 — 드라마에 퀴어 캐릭터가 늘고,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퀴어 리얼리티가 제작되고, 미술관이 전관을 퀴어 전시에 내어주기 시작했어요. 법과 문화는 항상 다른 속도로 움직이거든요.

아트 디렉터 김선정은 "이전 전시들은 게이 남성 작가에 집중됐으나, 여성 퀴어 작가를 중심에 둔 전시는 없었다. 이번 전시는 더 포괄적이다"라고 말해요. 74명(팀)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했어요.

아시아를 가로지른 시리즈

스펙트로신테시스는 선프라이드재단이 아시아 각 도시의 주요 미술 기관과 협력해 개최하는 시리즈예요. 2017년 타이베이에서 처음 열렸어요.

회차연도도시기관
I2017타이베이타이베이현대미술관 — 아시아 최초 미술관 퀴어 전시
II2019–20방콕방콕아트앤컬처센터 — 동남아시아 역대 최대 규모
III2022–23홍콩Tai Kwun Contemporary — 홍콩 최초 주요 기관 퀴어 전시
IV2026서울아트선재센터 — 한국 최초
다음미정도쿄도쿄도현대미술관(예정)

매 도시에서 "최초"였어요. 타이베이, 방콕, 홍콩, 그리고 서울. 이 시리즈가 닿는 곳들은 아시아에서 퀴어 문화가 비교적 가시적인 도시들이에요. 서울은 그 궤적 위에 있고, 다음은 도쿄예요.

꼭 봐야 할 작품들

74명(팀)이 참여한 대규모 전시예요. 하루에 다 보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중에서 놓치면 아쉬운 작품들을 골랐어요.

siren eun young jung — 〈Sick Seoul〉

이 전시를 위해 새로 만든 작품이에요. 4K 영상에 사운드가 더해진 25분짜리 작업이에요.

2024년 계엄 선포 이후 서울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그 안에서 퀴어 활동가들이 어떻게 집회에 참여하고, 어떻게 집단적 정치 주체로 변환되는지를 기록했어요. 시위대의 리듬, 반복, 그 움직임 속에서 퀴어 연대가 어떤 형태를 갖는지 물어요.

매우 최근의 한국 역사와 퀴어 운동이 한 화면에 놓이는 작품이에요. 가볍게 지나치기 어려워요. 25분을 온전히 볼 시간을 남겨두세요.

siren eun young jung 〈Sick Seoul〉 영상 스틸

오인환 (Inhwan Oh) — 〈Where He Meets Him in Seoul〉

이미 도입부에서 썼지만, 직접 보려면 지하층으로 내려가야 해요. 436×618cm 크기의 향 분말 설치예요.

개막 때 불이 붙은 이후에는 흔적만 남아 있어요. 탄 자국, 재, 그리고 냄새. 그게 이 작품이에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라지는 방식으로 보이게 되는 작업이에요.

이태원, 종로 — 서울 게이 커뮤니티 공간의 역사를 직접 다루는 몇 안 되는 작품이에요. 어떤 이름들이 거기 있는지, 어떤 이름들이 이미 연기가 됐는지, 직접 확인해보세요.

오인환 〈Where He Meets Him in Seoul〉 향 분말 설치 흔적

전시장 내부 전경 — 오인환 향 분말 설치와 벽면 작품들

Dew Kim — 〈DEEPSPACE PAROUSIA〉

한국 젊은 퀴어 작가의 신규 커미션이에요. 3부작 멀티미디어 설치로 구성된 작업이고요.

핵심은 《Inversion Chamber》예요. 공기를 리드미컬하게 팽창시키고 수축시키는 퍼포머티브 구조물이에요. 공간에 들어서면 공기의 움직임이 신체를 직접 건드려요. 말로 설명하면 어색한데, 몸으로 느끼면 다른 작업이에요.

가상의 분신 "Huh Need-you"를 통한 정체성 실험도 이 작품의 일부예요. 고정된 정체성 대신 계속 변형되는 자아를 탐구하는 작업이에요.

Sin Wai Kin — 〈ESSENCE〉

영국 퀴어 작가의 멀티미디어 설치예요. 작가 자신의 분신 "Wai King"을 아르카디아 풍경의 말 위에 올린 럭셔리 향수 광고처럼 연출한 작품이에요.

보면 잠깐 멈추게 돼요. 이건 진짜 광고 같기도 하고, 그 형식 자체를 비틀고 있기도 해요. 남성성이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구성되고 반복되는지, 광고 언어로 묻는 작업이에요. 퀴어한 유머와 날카로운 시각이 같이 있어요.

Mark Bradford — 〈Nadir〉

국제 미술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작가예요. 이 전시만을 위해 현장에서 직접 제작한 신작이거든요.

염색 종이를 레이어링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기억의 깊이를 드러내는 대형 작업이에요.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을 위해서만 만들어졌어요.

Mark Bradford 〈Nadir〉 — 전시를 위해 현장 제작된 대형 설치


2층에는 선프라이드재단 소장품도 있어요. Robert Rauschenberg, Annie Leibovitz, David Wojnarowicz, Derek Jarman — 퀴어 예술 역사의 굵직한 이름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요. 이 층에서 출발해 흐름을 잡고 올라오는 게 동선 면에서 좋아요.

지하층 영상 설치 공간

퍼포먼스 프로그램도 전시 기간 중 운영돼요. 구자혜, 루킴, 이동현, 이반지하, 전우진의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고, 사회학자·문학평론가·미술사학자가 참여하는 토크도 열려요. 일정은 아트선재센터 공식 채널에서 확인하세요.

가기 전에 알아두세요

장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87, 아트선재센터

교통: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정독도서관 방향으로 도보 7–10분이에요. 주차 공간이 협소하니 대중교통이 편해요.

관람 시간: 화요일–일요일 12:00–19:00 (월요일 휴관)

영문 공식 사이트에서는 18시까지로 안내하는 경우가 있어요. 방문 전 artsonje.org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세요.

입장료:

  • 25–64세: 10,000원
  • 19–24세 / 65세 이상: 7,000원
  • 9–18세: 5,000원
  • 8세 이하 / 장애인 / ICOM·CIMAM·SCM 카드 소지자: 무료

네이버 예약이 가능해요. 주말이나 공휴일 방문 전에는 미리 예약해두는 게 좋아요.

얼마나 걸리나요: 작품을 대강 훑으면 1시간 30분 정도예요. siren eun young jung의 영상 작품이 25분이라, 영상까지 제대로 보려면 2시간 30분 이상 잡는 게 좋아요.

추천 동선:

  1. 2층 먼저 — 선프라이드재단 소장품으로 퀴어 아트의 역사를 훑어요. 문맥을 잡고 나머지 층을 보면 더 깊게 읽혀요.
  2. 3층 — 한국 동시대 퀴어 아트. siren eun young jung의 〈Sick Seoul〉이 여기에 있어요.
  3. 지하–1층 — 실험적 설치 작품들. 오인환의 향 분말 설치가 여기에 있어요.

주변: 소격동·삼청동 카페거리가 도보 10분 거리예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도보 5분이에요. 소격동 일대는 게이 커뮤니티 공간이 밀집된 지역은 아니에요. 관람 후 이태원이나 마포 방면으로 이동하는 동선을 고려할 수 있어요.

아트선재센터 외관

6월 28일까지

전시는 6월 28일에 끝나요.

타이베이에서 시작해 방콕, 홍콩을 거쳐 서울까지 온 시리즈예요. 다음은 도쿄예요. 서울 차례가 지나면 이 전시는 이동해요.

한국 미술 기관이 퀴어를 주제로 전관을 내준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 경험이 6월 28일이면 끝나요.

오인환의 향 분말 이름들처럼 — 불에 탔다고 사라진 게 아닌 것들이 있어요. 이 전시도 분명 그럴 거예요. 하지만 직접 가서 보는 건 지금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