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자"고 했을 때
"같이 살자"는 말을 꺼낸 날, 혹은 그 말을 들은 날을 기억하세요? 설레고, 기쁘고, 동시에 막막했을 거예요. 이성 커플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 — 신혼부부 특별공급, 건강보험 피부양자, 법적 배우자 — 이 중 어느 것도 우리에겐 기본으로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많은 게이 커플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에서 함께 살고 있어요. 법이 없는 자리를 스스로 채우면서요. 이 글은 그 현실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선택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했어요. "법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한다"가 아니라, "법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서로를 지킬 수 있는가"에 집중할게요.

집 구하기 — 현실적인 이야기
공공주택은 문이 닫혀 있어요
신혼부부 특별공급, LH 신혼부부 임대주택. 이름만 들어도 아는 것들이죠. 법률혼 또는 사실혼 부부에게만 문이 열려 있는 제도예요. 동성 커플은 신청 자격이 없어요.
2020년에 보도된 사례가 있어요. 동성 커플이 각자 1인가구로 행복주택에 당첨돼 따로따로 좁은 방에 살게 된 이야기예요. "신혼부부였다면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살았을 것"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남아요. 게다가 행복주택 규정에 "직계가족이 아닌 사람의 방문 제한" 조항이 있어서, 파트너 방문조차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나요?
대부분의 게이 커플이 선택하는 방법은 민간 전세나 월세예요. 집주인이나 부동산 중개사에게 커플임을 밝히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룸메이트", "친구"로 소개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계약 방식은 두 가지예요.
한 명 명의로 계약하는 경우: 가장 흔한 방식이에요. 한 명이 임차인으로 계약하고 두 명이 실거주해요. 이 경우 계약 외 거주자인 파트너는 법적으로 취약한 위치가 돼요. 전세금 반환 분쟁 등이 생겼을 때 파트너가 보호받기 어려울 수 있어요.
공동명의로 계약하는 경우: 법적으로 두 명이 함께 임차인으로 기재하는 것도 가능해요. 혼인 여부와 무관해요. 공동명의 계약을 하면 두 명 모두 전입신고해야 대항력을 확보할 수 있어요.
전입신고는 필수예요: 동거한 지 30일이 넘으면 14일 이내에 전입신고를 해야 해요. 미이행 시 과태료가 부과되고, 전입신고를 해야 임대차 보호법상 대항력도 생겨요.
공동명의 계약이 법적으로 더 안전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가능한 건 아니에요. 집을 구할 때 어떤 방식이 자신들의 상황에 맞는지 미리 이야기해두는 게 좋아요.
법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
2024년, 달라진 것 하나
2024년 7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어요. 동성 파트너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될 수 있다는 판결이에요.
소성욱·김용민 커플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이 그 출발이었어요. 대법원은 "사실혼에 준하는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면, 이성이 아닌 동성이라는 이유로 피부양자 자격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했어요.
이 판결은 게이 커플에게 실질적인 의미가 있어요. 직장 건강보험 가입자인 파트너가 있다면, 소득이 없거나 적은 파트너를 피부양자로 등록해서 건강보험료를 아낄 수 있어요.
단, 실무 적용이 일률적이지 않아요. 건강보험공단(1577-1000)에 먼저 문의해서 사실혼에 준하는 관계를 소명하는 자료(동거 확인 서류, 생활비 공유 기록 등)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좋아요.
아웃팅 주의: 직장 건강보험을 통해 피부양자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직장에 파트너 관계가 알려질 수 있어요. 이 부분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해요.
아직 없는 것들
솔직하게 나열할게요.
- 상속권: 동성 파트너는 법정 상속인이 아니에요. 유언장 없이 파트너가 사망하면, 재산은 법적 가족(부모·형제)에게 가요.
- 의료 동의권/면회권: 응급 수술이나 중대한 치료 결정에서 동의권은 원칙적으로 법적 가족만 가져요.
- 국민연금 유족급여: 파트너 사망 시 유족급여를 받을 수 없어요.
- 증여세 배우자공제: 이성 법률혼 부부는 6억 원까지 증여세 없이 증여할 수 있지만, 동성 커플에겐 이 혜택이 없어요. 기타친족 분류로 10년간 1천만 원까지만 공제돼요.
- 소득세 배우자 공제: 적용 안 돼요.
- 부부 공동 계좌: 법률혼 부부 전용 상품이에요.
생활동반자법이 2025년 9월 다시 발의됐지만, 2026년 3월 현재 국회 본회의 논의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황이에요.
법적 공백을 채우는 방법

법이 느리더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법률 전문가 상담을 통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준비하는 걸 권장해요.
공증 유언장 작성
파트너에게 재산을 남기고 싶다면 유언장이 유일한 수단이에요. 공증인 사무소나 법무사를 통해 공증된 유언장을 작성하면 법적 구속력이 생겨요. 공증 없이 자필로 쓴 유언장은 형식 요건이 까다롭고 분쟁 가능성이 있어서 공증을 권장해요.
의료 사전지시서 / 의료대리인 지정
응급 상황에서 파트너에게 의료 결정권을 위임하는 문서예요. 법적 구속력은 병원마다 다를 수 있어서 공증을 받아두는 게 안전해요. 이 문서가 있다면 의료진에게 파트너의 의사결정 역할을 요청할 근거가 생겨요.
법률 전문가에게 먼저 물어보세요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아래 기관에 먼저 연락해보세요. 성소수자의 법적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에요.
- SOGILAW (sogilaw.org): 성적지향·성별정체성 관련 법률 연구·자문
- 희망법 (hopeandlaw.org): 동성 파트너 건강보험 피부양자 판결을 지원한 단체, 성소수자 법적 문제 전문
- 공감 (kpil.org): 공익소송·법률 지원
재정 관리 — 현실적인 방법들
공동 생활비 계좌 운용
법률상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은행에서 제공하는 '부부 공동 계좌' 상품은 사용할 수 없어요. 대신 많은 커플이 이렇게 운용해요.
한 명 명의의 계좌를 만들고, 매달 두 명이 같은 금액을 이체해요. 그 계좌를 생활비 전용으로 쓰는 방식이에요. 투명하게 운용하려면 매달 수입과 지출을 공유하는 간단한 재정 확인 시간을 갖는 게 도움돼요.
개인 자유 자금은 각자 계좌에서 따로 관리하고, 여행이나 비상금 목적의 공동 저축 계좌를 별도로 두는 것도 좋아요.
이체 기록을 남겨두세요
생활비 분담 이체 기록은 파트너 관계를 소명할 때 활용 가능한 자료가 될 수 있어요.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 등에서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입증해야 할 때 도움이 돼요.
큰 금액을 파트너에게 이체할 때는 주의가 필요해요. 생활비 분담임을 명확히 기록해두지 않으면 증여로 해석될 수 있어요. 공동 자산을 한 명 명의로 관리할 경우에도 분담 비율을 문서로 남겨두는 게 안전해요.
구체적인 재정 및 세금 문제는 전문가 상담을 권장해요.
보험
생명보험 수익자로 파트너를 지정하는 것은 일부 가능해요. 다만 보험사마다 정책이 달라요. 실손보험 가족 특약(배우자 포함)은 법률혼만 해당해서 파트너에게 적용이 안 돼요. 보험을 검토할 때는 해당 보험사에 직접 확인해보세요.
함께 사는 일상

가사, 역할 분담
이성 커플 사이에 암묵적으로 작동하는 젠더 역할 기대가 게이 커플에겐 없어요. 요리는 누가, 청소는 누가, 설거지는 누가 — 처음부터 직접 이야기해서 정해야 해요. 불편할 수 있지만, 오히려 기회이기도 해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집을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명절과 가족
커밍아웃 여부에 따라 명절 풍경이 달라요.
아직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은 경우, 명절에는 각자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패턴이 일반적이에요.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만 말하거나, 파트너를 "친구", "룸메이트"로 소개하기도 해요. 마트에서 파트너를 "자기야"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 공간 — 익숙해지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날도 오지만, 가끔 이상하게 쓸쓸한 날도 있어요.
한쪽 혹은 양쪽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경우에는 명절을 함께 보내거나 파트너를 가족 행사에 동반하는 것도 가능해요.
이웃과 동네
한국 도시, 특히 서울에서 동성 커플을 이웃이 알아채더라도 대부분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요. "룸메이트"로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경우도 많고요. 다만 오래된 동네나 소도시일수록 조금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어요. 어디에 살지 선택할 때 이 부분을 고려하는 커플도 있어요.
2025년, 국가 통계에 처음으로 기록된 우리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처음으로 동성 배우자를 '배우자(사실혼)' 또는 '비혼동거(함께 사는 연인 등)'로 입력할 수 있게 됐어요. 1925년 첫 조사 이후 100년 만의 변화예요. 조사에서 오류 처리되던 우리의 존재가 처음으로 국가 통계에 기록될 수 있게 된 거예요.
지원 리소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생기면, 아래 곳들에 연락해보세요.
상담
- 친구사이 (chingusai.net):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전화상담 02-6953-7941 (화·목 20:00–22:30, 공휴일 제외). 온라인 상담도 가능해요.
- 퀴어헬스 (queerhealth.kr): 성소수자를 위한 의료·정신건강·법률 상담 기관 안내. 성소수자 친화적 병원과 상담센터를 찾을 수 있어요.
위기 상황이라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24시간),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1577-0199 (24시간)에 연락할 수 있어요.
법률
- SOGILAW (sogilaw.org): 성소수자 법률 연구·자문, 인권현황 보고서 발간
- 희망법 (hopeandlaw.org): 성소수자 법적 문제 전문, 공익 법률 지원
- 공감 (kpil.org): 공익소송·법률 지원
법적 준비(유언장, 의료사전지시서 등)를 시작할 때는 법률 전문가 상담을 권장해요.
마무리 — 법이 느려도 우리의 삶은 지금 여기에 있어요
한국에서 게이 커플로 산다는 건, 이성 커플에게 기본으로 주어지는 제도적 보호 없이 둘이서 빈 공간을 채워가는 일이에요. 공공주택은 신청할 수 없고, 법적 배우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유언장을 직접 써야 상속이 가능해요.
그 현실은 분명히 불평등해요. 그리고 동시에, 많은 커플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아침을 먹고, 청소기를 돌리고, 명절을 넘기고 있어요.
2024년 대법원 판결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이라는 문이 열렸어요.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처음으로 동성 배우자가 통계에 기록됐어요. 느리지만,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요.
제도가 따라오기를 기다리면서, 그 전에 우리가 서로를 지킬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챙겨나가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공증 유언장 하나, 의료사전지시서 하나, 이체 기록 하나 — 소소해 보여도 실제로 의미 있는 준비예요.
함께 살기로 결정한 것, 그 자체가 이미 충분한 용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