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는 사고가 나는 곳이에요.
높은 곳에서 무게 나가는 게 떨어지고, 용접 불꽃이 튀고, 기계는 멈추지 않아요. 이현중(가명, 20대)은 그런 곳에서 매일 일해요. 울산의 조선소 노동자죠. 출근하면서 사고 가능성을 몸으로 아는 사람이에요.
파트너 오승재(가명, 20대)는 공무원이에요. 두 사람은 함께 살고 있어요.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에는 오승재가 이현중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어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 두 사람을 배우자로 인정한다는 거예요. 국가 기관이 서류로 확인해준 거죠.
그런데 이현중이 작업 중에 다쳐 응급실에 실려 간다면, 오승재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어요. 의료법에서 수술 동의는 법적 가족만 할 수 있거든요.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하니 중환자실에도 들어가지 못해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두 사람을 배우자로 인정했어요. 하지만 구청은 혼인 신고를 거부했어요. 법원은 이 관계에 보호를 부여하지 않아요. 국가가 한쪽 창구에서는 이 관계를 배우자로 인정하면서, 바로 다음 창구에서는 법적으로 타인으로 취급하는 거예요.
이 모순이 이현중과 오승재가 2026년 4월 8일 울산가정법원에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신청을 내게 된 이유예요.

같은 날, 세 도시에서
울산만이 아니었어요. 같은 날 같은 시각, 부산가정법원과 대구가정법원에서도 소장이 접수됐어요. 세 도시, 세 커플, 세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법원 문을 두드렸어요.
부산 — 20년을 함께 살았는데 법적으로 타인이에요
부산에는 60대 A씨와 50대 B씨가 있어요.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남성 커플이에요.
20년이라는 숫자를 잠깐 생각해봐요. 함께 살 집을 고르고, 이사하고, 냉장고를 처음 채워나갔을 거예요. 서로의 생일을 수십 번 챙겼고, 한쪽이 아플 때 간호했고, 가족 중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면 그 슬픔도 나눴을 거예요. 함께 차를 사고 할부금을 냈을 수도, 노후를 어디서 보낼지 이야기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20년 내내 법적으로는 타인이었어요.
A씨가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B씨는 보호자 칸에 이름을 쓸 수 없어요. 두 사람이 함께 살던 집이 A씨 명의 전세 계약이었는데 A씨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B씨는 그 집에서 나가야 할 수 있어요. 임차권 승계는 법적 배우자나 직계가족에게만 되거든요. A씨가 평생 납부해온 국민연금에서 나오는 유족연금도 법적 배우자에게만 지급돼요. 20년을 함께 살았어도, B씨는 그 연금을 받을 수 없어요. A씨가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재산도 법적으로는 B씨와 무관한 것이 돼요.
20년이 숫자로만 남는 거예요.
민변 부산지부 변호사 22명이 대리인단을 구성해 이 커플과 함께했어요. 이 커플이 2025년 12월 부산 연제구청에 혼인 신고를 넣었을 때 돌아온 답은 "현행법상 수리할 수 없음"이었어요. 그리고 넉 달 후, 법원 앞에 섰어요.
대구 —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어요
대구에서는 임아현(30)과 최진아(29)가 소송에 참여했어요. 두 사람은 기자회견에서 실명을 공개했어요.
부산 커플은 익명이에요. 울산 커플도 가명이에요. 대구 커플만 이름을 밝혔어요.
이게 가볍지 않은 선택이에요. 대구는 한국에서 보수 정치의 상징 같은 도시예요. 퀴어 커뮤니티가 없다는 게 아니라, 가시성이 낮아요. 조용하게, 알음알음으로 서로를 알아가야 하는 도시예요. 서울의 이태원이나 종로처럼,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가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 도시에서 30대 여성 두 명이 카메라 앞에 이름과 얼굴을 내놓은 거예요.
임아현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고 싶다"고 했어요. 최진아는 "남들만큼 평범하게 결혼해 축하받고 싶다"고 했어요. 얼마나 단순한 바람인가요. 결혼식에서 사람들이 박수 치고, 친구들이 화환을 보내고, 가족들이 눈물 흘리는 그 날. 그걸 원한다는 말을 법원까지 가서 해야 하는 나라예요, 지금은.
대구 커플은 소송에 더해 4월 말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낼 계획이에요.

왜 지금, 왜 영남인가
수도권 바깥에서 혼인평등소송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출발점은 2024년 10월이에요. 수도권의 동성 커플 11쌍이 서울과 수도권 6개 법원에 동시에 소장을 냈어요. 한국에서 처음 있는 집단 혼인평등소송이었어요. 이후 2025년 말까지 9건이 법원에서 기각돼 헌법재판소에 회부됐고, 3건은 지금도 법원 심리가 이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2026년 4월 8일, 두 번째 물결이 부산·울산·대구에서 일어났어요. 전국 소송 참여 커플은 이제 14쌍 이상이에요.
부산·대구·울산을 "보수 지역"이라고 말하는 건 맞는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설명이에요. 이 지역에서 게이 남성으로 산다는 것의 구체적인 현실이 있어요.
서울에는 이태원 게이힐이 있어요. 종로에는 수십 년 역사를 가진 게이 거리가 있어요. 낯선 사람도 같은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해요. 그 공간의 존재 자체가 커뮤니티를 가시적으로 만들어요. 가시적인 커뮤니티가 있으면 지지 구조가 생기고, 지지 구조가 있으면 용기를 내기가 조금은 더 쉬워져요.
부산이나 대구에서는 그런 공간이 상대적으로 훨씬 작고, 눈에 덜 띄어요. 아는 사람끼리, 조용히,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그 도시에서 법원 앞에 나선다는 건, 서울에서 나서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앞에 놓고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울산 커플 지지 단체의 슬로건이 있어요. "울산, 노동자의 도시. 사랑도 평등해야." 이 슬로건이 왜 울산에서 나온 건지, 거기에 맥락이 있어요.
법으로 막힌 것들 — 추상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소송 이야기를 하면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조금 더 구체적인 상황으로 가볼게요.
파트너가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의식이 없는 상태예요. 수술이 필요한데 의료진이 동의서를 내밀어요. 당신은 바로 옆에 있어요. 수십 년을 함께 살았어요. 하지만 서명란에 이름을 쓸 수 없어요. 의료법상 수술 동의는 법적 배우자나 직계가족만 할 수 있거든요. 파트너의 법적 가족이 연락이 안 되거나, 이 관계를 모르는 상태라면 상황은 더 복잡해져요. 당신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지만, 법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에요.
이건 이현중이 매일 출근하는 조선소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또 다른 상황. 파트너가 세상을 떠났어요. 두 사람이 20년 동안 함께 살던 집이 파트너 명의 전세 계약이었어요. 집주인이 계약 종료 후 재계약을 거부해요. 임차권 승계는 법적 배우자나 직계가족에게만 되는 거라, 남은 쪽은 법적 권리가 없어요. 오래 살던 집에서 짐을 쌓아 나가야 해요.
아직 세상을 떠나지 않아도 생기는 일도 있어요. 이성 부부라면 연말정산에서 배우자 공제를 받아요. 동성 커플은 해당이 없어요. 매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만큼 세금을 더 내는 거예요.
정리하면:
- 수술 동의서: 의료법상 법적 가족만 동의 가능. 파트너는 서명 불가.
- 중환자실 면회: 법적 가족만 허용하는 병원이 다수. 마지막을 곁에서 지키지 못할 수 있어요.
- 상속: 유언장 없이는 수십 년 함께 쌓은 재산도 법적으로 타인 것이 돼요.
- 국민연금 유족연금: 법적 배우자에게만 지급. 파트너가 먼저 세상을 떠나도 연금 수령 불가.
- 임차권 승계: 파트너 사망 시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할 수 있어요.
- 가족 동반 비자: 외국인 파트너가 있다면 함께 한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 배우자 세금 공제: 이성 부부보다 매년 세금을 더 내요.
혼인이라는 제도 하나가 없어서 생기는 빈틈이에요. 이 빈틈은 미리 알고 있어도, 막상 그 순간에는 막을 방법이 없어요.
국가가 한 손으로 인정하고 한 손으로 거부하는 것
2024년 7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중요한 결정을 내렸어요.
9 대 4였어요. 대법관 9명이 찬성하고 4명이 반대한 판결이에요. 내용은 이거예요. 동성 동반자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 사회보장 제도 안에서 동성 파트너의 관계가 처음으로 법적으로 인정된 사례예요. 대법원이 동성 커플의 관계는 이성 부부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 거예요.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생활을 공유하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 그 실질을 법원이 인정한 거죠.
울산의 이현중·오승재 커플이 이미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을 마친 것도 이 판결 덕분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선명하게 드러나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맞아요, 두 사람은 배우자 관계예요"라고 인정해요. 피부양자 등록을 허락해요. 그런데 울산 남구청은 "수리할 수 없어요"라고 혼인 신고를 거부해요. 같은 나라의 기관들이 같은 커플을 두고 다른 답을 내고 있어요.
국가가 한 손으로는 관계를 인정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혼인을 거부하는 거예요. 이 모순이 소송의 핵심이기도 해요. 국가가 이미 한쪽에서 관계를 인정한다면, 다른 쪽에서 계속 거부하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냐는 질문이에요.
헌법재판소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에요. 2024년 수도권 소송에서 회부된 9건도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어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일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시아 전체에서 흐름이 바뀌고 있어요.
2019년,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어요. 2024년, 태국이 동성결혼을 법으로 인정했어요. 2025년, 일본 대법원이 동성혼 금지는 위헌이라고 판결했어요. 같은 아시아 안에서, 법이 달라지고 있어요.
그 흐름 속에서 한국은 수도권 소송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이 아직 없는 상태예요. 그러는 사이, 영남에서 두 번째 물결이 올라왔어요.
이 소송을 응원하고 싶다면
한국 혼인평등소송의 주요 법률 지원 단체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kpil.org)이에요. 후원으로 함께할 수 있어요.
SNS에서 #혼인평등, #혼인평등소송 해시태그를 달아 소식을 퍼뜨리는 것도 방법이에요. 법원 밖에서 목소리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기도 해요.
임아현과 최진아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요.
"남들만큼 평범하게 결혼해 축하받고 싶어요."
이걸 법원에서 싸워야만 말할 수 있는 나라예요, 지금은. 부산·울산·대구 세 커플이 영남에서 그 싸움을 시작했어요.
법적 사항은 변호사 등 전문가와 상담하세요. 이 글은 소송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며 법률 조언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