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펼치기 ][ 접기 ]
1.개요
게이 공간은 게이 남성이 모이는 업소와 그 업소들이 모인 거리를 이른다.[1] 술을 파는 게이바와
술이 아닌 것을 파는 찜방, DVD방은 게이 업소라는 말로 함께 묶는다.[1] 1996년 서울에만 게이바가
70여 곳 있었고, 탑골공원 뒤 낙원동과 이태원에 몰려 있었다.[2]
2.역사
게이 남성들이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관계망을 이룬 것은 1960년대 후반으로 보인다. 이 관계망은 1980년대 후반 크게 불어났다. 언론이 종로3가 파고다극장을 동성애자가 모이는 곳으로 보도한 것이 오히려 커뮤니티를 키운 계기가 됐다.[3]
초기에는 종로와 신당동 일대의 극장, 사우나, 술집이 중심이었다. 이곳에서는 작은 친목 모임이 이어졌고, 만남이 오래가는 연애로 이어지기도 했다.[3] 서울에서 게이 남성을 주된 손님으로 받는 업소는 종로에서 1970년대부터, 이태원에서 1990년대부터 생기기 시작했다.[4]
2000년대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모임이 이태원에서 주로 열리면서 종로는 윗세대, 이태원은 젊은 세대로 갈리기도 했다.[1]
3.업소
게이바는 게이 남성을 주된 손님으로 받는 술집을 두루 이르는 말로, 작은 바와 소주방, 노래를 부르는 가라오케, 춤을 추는 클럽이 모두 여기에 든다.[5] 성관계를 목적으로 찾는 게이 전용 휴게텔은 찜방이라고 부른다.[6]
4.지역
4.1.종로
자세한 내용은 게이 공간/종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종로의 게이 공간은 종로3가역 북쪽 낙원동 일대에 있다.[1] 게이 남성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7] 2005년 무렵 낙원동 일대의 게이 업소는 게이바와 DVD방을 합쳐 약 85곳이었다.[1]
4.2.이태원
자세한 내용은 게이 공간/이태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태원소방서 뒤편 언덕 골목에 게이클럽이 모여 있고,[8] 이 골목을 흔히 게이힐이라고 부른다.[9] 게이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10] 1995년과 1996년 파슈와 스파르타쿠스가 문을 열며 클럽 시대가 시작됐다.[11][12]
4.3.지방
서울 밖의 게이 공간은 규모가 작고 사람들이 서로 촘촘히 이어져 있다. 2023년 12월 기준으로 제주에는 게이 술집 여덟 곳이 제주시 탑동과 칠성로에 가까이 모여 있었다. 주말에는 하루 50명 안팎의 손님이 이 술집들을 찾는다고 한다.[13] 술집들은 주로 찾는 손님의 나이대로 나뉜다고 연구 참여자들은 말하지만, 연구자가 지켜본 바로는 그 기준이 딱 지켜지지는 않았다.[13]
제주에는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어 궨당에서 나온 궨당 문화가 있다. 한 연구 참여자는 세 다리만 건너면 모두
친척이고 서로 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13] 그래서 데이팅 앱에서 먼저 묻는 말이
"도민이세요?"이고, 상대가 도민이라고 하면 만나기를 꺼리기도 한다.[13] 여덟 곳의 술집 사이에서는 소문이
아주 빠르게 퍼져서 업주들이 서로 언행을 조심한다.[13] 술집 사장이나 직원의 소개로 사람을 만나는 손님도
있다. 한 참여자는 소개해 준 사람이 상대의 생김새와 나이를 어느 정도 "보증"해 주니 앱보다 편했다고 말했다.[13]
5.오해
- 지방에는 게이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 제주에만 해도 2023년 기준 게이 술집 여덟 곳이 영업하고 있었다.[13]
6.관련 문서
각주
-
이서진, 「게이 남성의 장소 형성: 종로구 낙원동을 사례로」, 『지리학논총』 49호, 2007. ↩ ↩2 ↩3 ↩4 ↩5
-
한국일보, 「게이바 서울만 70여곳/이태원·낙원동 일대 그들만의 '천국'」, 1996년 11월 9일. ↩
-
임동현, 「미디어의 진화와 게이 하위문화의 구조변동: 집단 범주화 문제를 중심으로」, 『언론정보연구』 62권 1호, 2025. ↩ ↩2
-
김대현·이유나, 「게이 남성 관계・돌봄 실천의 조건: 첫 세대 비(이성애)혼 게이커뮤니티의 명암」, 『가족과 커뮤니티』 10집, 2024. ↩
-
게이코리아, 업소 게시판 목록 (BAR, 주점ㆍ소주방, 가라오케, CLUB), 2026년 9월 22일 기준. ↩
-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 『친구사이 소식지』 99호, 2018년 9월 30일. 『주간경향』, 『BUDDY』, 『보릿자루』 등의 기사를 인용한 글이다. ↩
-
맹휘, 「밤의 가면: 이태원 게이힐과 드랙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4. ↩
-
오마이스타, 「이태원 '게이힐'에 울려 퍼진 르세라핌 노래, 반가웠습니다」, 2024년 11월 24일. ↩
-
IT기자클럽, 「나는 나일뿐, 이태원의 게이바」, 2012년 8월 22일. ↩
-
일요시사, 「[현장르포] 게이들의 '놀이터' 이태원을 가다」, 2012년 1월 27일. ↩
-
신경준, 「섬-소수자의 연결된 삶 만들기: 제주시 게이 술집의 사례를 통하여」, 『지역과 세계』 49권 1호, 2025. ↩ ↩2 ↩3 ↩4 ↩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