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게이 공간의 역사 한눈에
- 중심
- 종로구 낙원동 일대
- 자리 잡은 때
- 1970년대
- 옛 중심
- 파고다극장 (2000년대 초 폐관)
어디를 말하나
종로3가역 북쪽,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사이의 낙원동 일대입니다. 서쪽으로 인사동, 동쪽으로 종묘가 있고, 게이바가 모인 골목과 돈화문로의 포장마차 거리가 이어져 있습니다.
게이 남성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입니다. 이태원이 1990년대 후반에 떠오른 것과 비교하면 한 세대 앞섭니다.
극장에서 시작된 만남
서울에서 게이 남성들이 처음 모인 곳은 극장이었습니다. 두 편을 이어 트는 동시상영관의 어두운 뒷자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기 좋은 자리였고, 그런 극장 주변에 게이가 드나드는 술집이 생겼습니다. 시기마다 중심이 된 극장은 이렇습니다.
| 시기 | 극장 |
|---|---|
| 1950년대 | 명동 동명극장, 뉴만극장 |
| 1960년대 | 신당동 광무극장, 극동극장 |
| 1970년대 | 종로3가 파고다극장 |
| 1980년대 | 신당동 성동극장 |
종로보다 먼저 이름을 알린 곳은 신당동입니다. 신당동에는 1960년대부터 게이들이 꾸준히 모였고, 1980년대에는 지금의 종로나 이태원만큼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1993~1994년에 성동극장이 문을 닫자 신당동의 게이바는 줄거나 업종을 바꿨고, 그곳에 모이던 사람들이 낙원동으로 옮겨 오기 시작했습니다.
1968년 종삼 철거
종로3가 뒷골목에는 종삼이라고 불린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1968년 9월 말
정화추진본부를 꾸리고 10월 초 이곳을 철거했습니다. 이듬해 봄 일부가 다시 들어섰지만, 거리는
이때부터 크게 바뀌었습니다. 낙원상가도 같은 시기에 지어져 1969년 완공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 철거는 비워진 자리에 게이 업소가 들어설 수 있게 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다만 철거 직후 곧바로 게이 거리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게이바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70년대 후반입니다.
파고다극장과 탑골공원
파고다극장은 탑골공원 동쪽, 낙원동에 있던 극장입니다. 1960년대 후반 신문에 이미 이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개관을 1970년대 중반으로 적은 연구도 있어 정확한 개관 연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1970년대 이 극장은 게이 남성들의 대표적인 만남 장소가 됐습니다. P극장이라고 줄여 불렀고,
뒷좌석 같은 후미진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만났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극장 주변에 게이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 종로3가에 문을 연 「심」은 한국 최초의 게이바로 기록돼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탑골공원 일대도 만남 장소였습니다. 공원 안 원각사지 십층석탑 주위를 돌며 상대를 찾는 사람을 탑돌이라고 불렀습니다.
단속도 있었습니다. 1983년에는 종로3가 익선동의 한 게이바에서 여장한 종업원 두 명이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즉결심판에 넘겨졌습니다. 경찰이 내세운 근거는 혐오감이었습니다.
1990년대, 심야영업 제한과 이태원의 등장
1990년대에는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이 제한됐습니다. 1999년 3월 제한이 풀리기 전까지 게이 업소 대부분은 자정 넘어 몰래 영업했습니다. 광고에 "매일밤 11:30-12:00 봉고대기"라고 적어 자정 이후에도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린 가게도 있었습니다. 불법 심야영업은 경찰이 게이 업소를 단속하는 명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시기 PC통신과 인터넷에서 게이 모임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1996년 이후 온라인 모임의 대규모 정기모임은 주로 이태원에서 열렸습니다.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이태원으로, 윗세대는 종로로 모이는 흐름이 이때 생겼습니다.
2000년대, 극장이 닫고 골목이 남다
파고다극장은 2000년대 초 문을 닫았습니다. 문을 닫기 전까지 극장 주변에는 게이바를 비롯한 게이 업소가 60~80곳 있었습니다.
만남이 인터넷으로 옮겨 가면서 폭력과 아웃팅 위험이 컸던 극장 크루징은 사라져 갔습니다. 그런데 낙원동 골목은 오히려 더 붐볐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이태원의 업소가 줄어드는 사이 업소는 낙원동으로 몰렸고, 2005년 무렵 낙원동 일대의 게이 업소는 게이바와 DVD방을 합쳐 약 85곳이었습니다.
포장마차 거리
돈화문로 쪽 포장마차 거리는 흩어져 있던 포장마차가 2010년 전후 한 거리로 정비되며 생겼습니다. 주말 밤 게이들이 모이는 자리로 알려졌고, 바로 옆 익선동이 뜬 뒤로는 게이가 아닌 손님도 많이 찾는 곳이 됐습니다. 이성애자 손님이 늘면서 전처럼 편하게 머물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
종로 게이 역사로 흔히 옮겨지는 이야기 가운데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 일제강점기에 게이들이 모이는 술집과 양복점이 있었다는 이야기
- 1950년대 게이들이 명동의 양장점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이야기. 극장이 만남 장소였다는 기록만 있습니다
- 1960년대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청계천 변을 거쳐 종로로 옮겨 왔다는 경로
- 파고다극장 근처에 있었다는 특정 게이바의 이름, 극장을 잘못 찾아간 사람들의 일화
- 온라인 게이 모임의 첫 정기모임에 1천 명이 모였다는 이야기
- 이태원이 뜬 뒤 종로가 쇠퇴했다는 서술. 기록은 2000년대 초 낙원동이 오히려 커졌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