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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징

게이[ 펼치기 ]

1.개요

크루징은 공원, 극장, 화장실 같은 공공장소나 게이 업소를 돌아다니며 상대를 찾는 일이다.[1] 영어 cruising에서 온 말이다. 연구 논문에서는 불특정 상대와의 성관계를 뜻하는 말로 쓰기도 한다.[2]

서울에서는 시외버스터미널의 화장실과 옥상, 파고다극장과 극동극장 같은 극장, 종묘공원과 남산공원에서 크루징이 성행했다. 인터넷이 생긴 뒤로는 공공장소에서 크루징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졌다.[1] 그 자리는 게이 전용 업소인 찜방과 위치 기반 게이 데이팅 앱이 이어받았다.[3][2]

2.명칭

영어 cruise는 배를 타고 즐기며 여기저기 다니는 일을 뜻하고, 속어로는 성관계 상대를 찾아 공공장소를 돌아다니는 일을 뜻한다.[4] 동사 cruise는 17세기 중반부터 쓰였고, 건너다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kruisen에서 왔을 것으로 본다.[5] 한국 게이 사이에서는 외래어를 그대로 써서 크루징이라고 부른다.[1]

장소에 따라 붙은 이름도 있었다. 밤에 탑골공원 주변을 서성이며 상대 남성을 찾던 사람들을 게이들의 은어로 탑돌이라고 불렀다.[6] 탑 주변을 맴도는 이 행동은 그 일대에 함께 있던 거리 성매매 여성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7]

1998년 게이 잡지 『버디』에 실린 연재 글은 길녀라는 말을 소개했다. 명동에 극장이 자리 잡고 종로에 게이바가 생겨날 무렵, 돈 없이 그 주위를 배회하던 게이들을 차별하고 조롱하려고 만든 말이라는 설명이다.[8] 2010년 친구사이 소식지의 한 칼럼은 크루징이 이뤄지던 극장을 크루징 극장이라고 불렀다.[3] 대중오락잡지에서는 파고다극장을 P극장이나 P싸롱으로 적었다.[7]

3.역사

3.1.1960년대까지

1950년대 서울의 게이들은 명동의 극장과 다방에서 만났다(종로).[9] 연구는 동성 간의 만남이 한국의 도시화·산업화와 함께 야간의 도심 공원, 극장, 사우나 수면실, 공공화장실로 옮겨 왔다고 본다. 이런 곳들은 대도시의 주요 터미널과 도심에 흩어져 있었다.[10]

1998년 『버디』의 연재 글은 남산공원의 크루징 역사를 1960년대 명동의 번성과 함께 놓았다. 필자는 남산이 크루징 장소가 된 까닭으로 소문, 숲이 우거져 몸을 숨기기 좋은 점, 도시에서 따로 떨어진 위치를 꼽았다.[8]

3.2.1970·80년대

1970년대에는 중심이 종로3가의 파고다극장으로 옮겨 갔다. 1960년대 말부터 두 편을 이어 트는 동시상영관이었고, 표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머물 수 있었다.[9] 김대현은 1970년대 이후 이 극장이 종로3가에 게이 업소가 모이는 구심점이 됐다고 본다.[7]

극장은 처음 게이 사회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의 입문처였지만 게이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서울의 모든 극장이 아니라 특정한 몇몇 극장이 그 역할을 했다.[6] 1998년 『버디』의 연재 글은 1980년대 들어 크루징 극장이 충무로, 청계천, 영등포, 남영동, 수유리 같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고 적었다.[11]

터미널도 주요한 장소였다. 같은 연재는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화장실뿐 아니라 옥상, 휴게실, 상가까지 상대를 찾는 곳이 됐고, 지방 도시의 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도 만남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고 적었다.[8] 연구는 남산과 탑골공원, 부산 자성대공원 같은 도심 공원의 밤 시간대와 고속터미널처럼 누구나 올 수 있지만 머물지는 않는 장소가 이런 역할을 했다고 정리한다.[10]

장소를 알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적대적인 언론이었다. 1980년대 『선데이서울』 같은 대중잡지는 P공원, 서울 N동의 P극장처럼 장소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기사를 실었다. 연구는 이 기사들이 일반 독자에게는 편견을 퍼뜨렸지만 다른 독자들에게는 크루징 정보로 쓰였을 것이라고 본다.[10] 1980년대 후반 에이즈 보도가 파고다극장을 동성애자가 모이는 곳으로 알린 일도 오히려 게이 커뮤니티를 키웠다.[2]

3.3.1990·2000년대

1990년대부터 공공장소의 크루징은 줄어들었다. 연구는 그 까닭으로 잇따른 공갈·협박과 성추행 사건, 공원에 조명과 CCTV를 다는 관리 방식의 변화, 극장의 멀티플렉스화를 든다. 크루징을 할 수 있는 공공장소의 수와 종류는 줄었고, 만남은 게이 전용 업소처럼 닫힌 공간으로 모여들었다.[10] 1990년대에는 게이 사우나, 곧 찜방이 나타났다.[7]

온라인 커뮤니티도 같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연구는 디지털 미디어가 비교적 안전하고 손쉬운 만남을 가능하게 하면서 폭력과 아웃팅 위험이 컸던 극장 크루징이 내리막을 걸었다고 본다. 글로만 대화하던 PC통신에서 사진을 주고받는 인터넷으로 넘어간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2]

극장은 2000년대에 차례로 문을 닫았다. 파고다극장은 2000년대 초에 닫았다(종로). 2010년 10월 친구사이 소식지의 칼럼은 청계천 근처의 바다극장마저 얼마 전 문을 닫아 크루징 극장은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고 적었다. 같은 글은 극장 크루징이 하던 역할이 인터넷 채팅과 사우나로 옮겨 갔다고 보았다.[3] 2013년 단속을 받은 서울의 한 게이 휴게방 업주는 "이전까지 동성애자들은 남산이나 고속터미널 화장실에서 만나왔다"고 말했다.[12]

크루징을 어떻게 볼지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논쟁거리였다. 1990년대 커뮤니티 안에서는 이런 공간에서 이뤄지는 크루징과 성적 실천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10] 1998년 『버디』에 실린 한 독자 편지는 "극장과 여관, 바를 전전하는 동성애자들을 삭제시켜버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젊은 동성애자들이 당당해지는 길은 극장과 사우나의 역사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고 썼다.[9]

3.4.데이팅 앱 이후

2010년대에는 가까운 사람부터 보여 주는 위치 기반 게이 데이팅 앱이 만남의 중심이 됐다. 연구는 앱마다 성격이 달라 연애 상대를 찾기에 맞는 앱과 크루징에 주로 쓰는 앱이 암묵적으로 나뉘어 있다고 본다.[2] 앱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하룻밤 만남을 잡는 일은 흔히 번개라고 부른다.

4.방식

공공장소의 크루징은 시선과 머무름으로 이뤄졌다. 극장은 어두워서 어느 정도 익명성을 보장했다.[6] 증언자들은 파고다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보다 어두운 구석에 선 채 크루징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기억한다.[10] 1998년 『버디』의 연재 글도 극장 통로마다 선 채로 눈빛을 주고받던 사람들을 그리며 제목을 「서 있는 사람들」로 붙였다.[11]

1972년 동성애자를 고발한다는 『주간경향』 기사는 극장에서 상대를 찾는 순서를 이렇게 적었다. 옆자리 관람객의 손을 슬그머니 잡고, 상대가 빙긋 웃으면 "암호가 통한 것"이다. "차한잔합시다"에 응하면 극장을 나와 다방으로, 다방에서 목욕탕으로 갔다.[13]

화장실 벽의 낙서도 신호였다. 공공화장실 벽에 동성 연애하실 분 같은 글귀와 연락처를 남기는 일이 있었고,[8] 2010년의 한 칼럼 필자는 청소년과 대학 시절 공중화장실 벽에서 동성 친구 구함이라는 메모와 전화번호, 삐삐 번호를 보았다고 적었다.[3] 게이들은 사우나나 극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장소 정보를 전해 듣거나, 터미널 화장실 벽에 쓰인 문구를 보고 다른 장소를 찾아내기도 했다.[10]

5.장소

크루징 장소로 기록에 남은 곳은 다음과 같다. 모두 지난 시기의 기록이다.

종류기록
극장동시상영관처럼 오래 머물 수 있는 극장. 종로3가의 파고다극장, 충무로의 극동극장, 청계천 근처의 바다극장이 대표적인 크루징 극장으로 꼽혔다[3]
공원밤 시간대의 도심 공원. 서울의 탑골공원·종묘공원·남산공원과 부산의 자성대공원이 기록에 있다[1][10]
공중화장실·터미널서울 고속버스터미널과 지방 시외버스터미널의 화장실, 고속버스터미널의 옥상과 휴게실[8]
사우나일반 사우나와 목욕탕의 수면실. 1990년대부터는 게이 전용 찜방[10][7]
쪽방돈의동 쪽방촌 일부에 남성들이 모여 섹스를 하던 돈광이 있었다[7]

찜방과 DVD방 같은 게이 업소도 크루징을 하는 곳이다. 친구사이 용어사전은 찜방을 게이들이 크루징이나 성관계를 하러 가는 휴게텔로 풀이한다.[14] 2000년대 낙원동 일대의 게이 업소 가운데에는 DVD방도 있었다.[6]

6.문제점

6.1.단속

공공장소에서 성행위를 하면 형법의 공연음란죄가 적용될 수 있다.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15] 김대현은 한국이 미국의 소도미법이나 한국 군형법처럼 동성 간 성행위를 직접 금지하는 대신, 주로 경범죄처벌법 같은 풍기문란 규정으로 성소수자를 처벌했다고 정리한다.[7]

단속은 일정하지 않았다. 파고다극장에서의 섹스는 때로 경찰 단속에 내몰렸고, 때로는 경찰의 비호 아래 이뤄졌다.[7] 1998년 『버디』의 연재 필자는 취재차 고속버스터미널 옥상에 올라갔다가 수위에게 쫓겨 그곳에 있던 게이들과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고 적었다. 같은 글에는 화장실에서 걸린 사람을 경찰이 벌금만 받고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다는 구술이 실려 있다.[8] 업소도 단속을 받았다. 2013년 서울 강남경찰서는 게이 휴게방 업주를 음란행위 알선 등의 혐의로 입건했고, 이런 휴게방은 그 전해부터 여러 차례 단속 대상이 됐다.[12]

6.2.협박과 강도

크루징을 하는 사람은 신고하기 어렵다는 약점을 노린 범죄의 표적이 됐다. 연구는 1990년대 공공장소에서 공갈·협박 사건이 잇따랐다고 적는다.[10] 2006년에는 남성 전용 사우나 수면실에서 동성애자가 몸을 만지도록 유인한 뒤 가족과 주위에 알리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은 일당이 붙잡혔다. 피해자 7명이 1,300여만 원을 빼앗겼고, 피해자들은 폭로가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16]

앱으로 만난 상대에게서 피해를 입는 일도 있다. 2016년 부산에서는 채팅 앱으로 처음 만난 남성에게 수면제를 탄 술을 먹이고 금품을 빼앗은 사람이 강도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피해자가 강도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범행했다고 판단했다.[17]

6.3.아웃팅

공공장소의 크루징은 늘 아웃팅, 곧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성적 지향이 드러날 위험을 안고 있었다. 연구는 극장 크루징을 폭력과 아웃팅 위험이 상당했던 만남 방식으로 본다.[2] 앱으로 옮겨 온 뒤에도 위험은 남았다. 같은 연구는 위치 기반 데이팅 앱에 늘 있는 아웃팅 우려가 앱 이용을 꺼리게 한다고 적었다.[2]

7.오해

  • 공원이나 터미널 화장실을 찾는 사람은 극장이나 게이바에 갈 돈이 없는 사람들뿐이라는 이야기. 1998년 『버디』의 연재 글은 이를 지나온 역사를 잊은 뒤에 내린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화장실 만남은 익명이 아니면 욕망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서 고른 방법이었고, 남산공원을 찾는 사람 가운데에도 게이바나 극장에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8]

8.여담

  • 친구사이 교육팀은 2024년과 2025년, 탑골공원에서 친구사이 사무실까지 걸으며 옛 크루징 장소와 종로의 게이 역사를 짚는 「친구사이 크루징 투어: 종로 역사편」을 열었다.[18] 2025년 11월 투어에는 30여 명이 참여했다.[19]

9.관련 문서

각주

  1. 친구사이 용어사전, 「크루징 / cruising」, 2010년 12월 7일. ↩ ↩2 ↩3 ↩4

  2. 임동현, 「미디어의 진화와 게이 하위문화의 구조변동: 집단 범주화 문제를 중심으로」, 『언론정보연구』 62권 1호, 2025. ↩ ↩2 ↩3 ↩4 ↩5 ↩6 ↩7

  3. 친구사이 소식지, 「파고다 극장을 추억하며」, 『친구사이 소식지』 6호, 2010년 10월 1일. ↩ ↩2 ↩3 ↩4 ↩5

  4. Cambridge Dictionary, 「cruise」. ↩

  5. Oxford Learner's Dictionaries, 「cruise (verb)」. ↩

  6. 이서진, 「게이 남성의 장소 형성: 종로구 낙원동을 사례로」, 『지리학논총』 49호, 2007. ↩ ↩2 ↩3 ↩4

  7. 김대현, 「종로3가 게이커뮤니티의 역사」, 『친구사이 소식지』 167호, 2024. 종로3가 답사 자료. ↩ ↩2 ↩3 ↩4 ↩5 ↩6 ↩7 ↩8

  8. 이송희일, 「한국 동성애 게토, 오욕과 오명의 연대기 2: 길녀, 베니스에 가다, 터미널, 공원과 남산의 역사」, 『버디』, 1998. 친구사이 소식지 재수록본, 2003년 10월 22일. 연재 필자는 여러 사람을 취재한 내용을 소설처럼 꾸며 썼다고 밝혔다. ↩ ↩2 ↩3 ↩4 ↩5 ↩6 ↩7

  9.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 『친구사이 소식지』 99호, 2018년 9월 30일. ↩ ↩2 ↩3

  10. 전원근, 「1980년대 『선데이서울』에 나타난 동성애 담론과 남성 동성애자들의 경험」, 『젠더와 문화』 8권 2호, 2015. ↩ ↩2 ↩3 ↩4 ↩5 ↩6 ↩7 ↩8 ↩9 ↩10

  11. 이송희일, 「한국 동성애 게토, 오욕과 오명의 연대기 1: 서 있는 사람들, 극장의 역사」, 『버디』 3호, 1998. 친구사이 소식지 재수록본, 2003년 10월 22일. 필자는 글의 인터뷰 대상이 여러 사람을 합쳐 만든 가공의 인물이라고 밝혔다. ↩ ↩2

  12. 한겨레, 「'동성애자 휴게방' 운영업자 불구속 입건」, 2013년 8월 15일. ↩ ↩2

  13. 『주간경향』 203호, 「고발: 마짜 떼자 전차, 남자끼리의 그 징그러운 서울 「보갈」족」, 1972년 10월 22일.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에서 재인용. ↩

  14. 친구사이 용어사전, 「찜방」, 2010년 12월 7일. ↩

  15. 국가법령정보센터, 「형법」 제245조. ↩

  16. YTN, 「동성애자 노린 '남자 꽃뱀'」, 2006년 4월 20일. ↩

  17. 부산일보, 「성소수자 노려 수면제 먹이고 금품 훔쳐」, 2016년 4월 20일. ↩

  18. 친구사이 소식지, 「하반기 교육프로그램 〈친구사이 크루징 투어: 종로 역사편〉 후기」, 『친구사이 소식지』 172호, 2024. ↩

  19. 친구사이 소식지, 「2025년 하반기 교육프로그램 〈친구사이 크루징 투어: 종로 역사편〉 후기」, 『친구사이 소식지』 185호,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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