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펼치기 ][ 접기 ]
1.개요
이반(異般)은 한국의 동성애자가 스스로를 이르는 은어다.[1] 이성애자를 일반(一般)이라고 부르는 데 빗대어,
일반과 다르다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2] 게이만이 아니라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아울러 성소수자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쓴다.[2][1]
1990년대 후반 PC통신의 동성애자 모임에서 널리 퍼졌고, 2000년대에는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흔히 썼다. 2010년대 이후로는 쓰임이 줄었다.[1] 지금은 이반시티 같은 사이트 이름과 몇몇 파생어에 남아 있다. 게이를 이르는 여러 말 가운데 하나로 게이 은어에 든다.
2.명칭
처음에는 두 이(二)를 써서 二般으로 적었다. 1990년대 후반 성소수자 운동이 시작되면서 이성애자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뜻의 다를 이(異)를 쓴 異般으로 넓어졌다.[3]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2007년 자료에서 二般을 일반이 아니라는 뜻으로, 異般을 다르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표기로 풀었다.[4] 2003년 게이 포털 해피이반의 소개문은 이반이 남들과 다르다는 뜻과 일반(1반) 다음으로 많은 이반(2반)이라는 뜻을 함께 가진다고 적었다.[5]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사전은 이 말이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은어라고 적는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동성애자, 게이,
레즈비언 같은 말을 쓰면 주변 사람이 쉽게 알아챘기 때문에 동성애자끼리만 알아듣는 말이 필요했다는 것이다.[1]
이반이라는 말이 퍼지기 전에는 이학년이라는 말도 썼다.[3]
가리키는 범위는 처음부터 넓었다. 1990년대 중후반의 성소수자 모임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엄격하게 나누지 않았고,
그래서 당시의 이반은 영어 퀴어에 해당하는 한국식 은어였다고 볼 수 있다.[1] 2000년대 이후에는 퀴어의 번역어로
쓰이기도 했다.[3]
짝이 되는 말은 일반이다.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 특히 이성애자를 가리킨다.[6]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은 이반을
양성애자, 동성애자, 성전환자 등의 성적 소수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었다.[2]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 뜻이 없고,
인심이 떠나서 배반함을 뜻하는 이반(離叛) 같은 다른 낱말만 올라 있다.[7]
3.역사
3.1.1990년대
이반이 언제 생겼는지는 자료마다 설명이 다르다. 해피이반 소개문은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때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한국말을 지어 보자는 고민에서 나온 말로, 1995년부터 쓰였다고 적었다.[5]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사전은 1990년대 중후반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생겼고, 1990년대 후반 PC통신 모임을 통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적는다.[1]
1996년에는 이미 모임의 글과 이름에 이 말이 보인다. 하이텔 동성애자 동호회 또하나의 사랑[8]의 소식지에는 "우리 소시민 이반들은 당신들이 은둔하여 숨죽이며 살아도 당신의 편입니다"라는 글이 실렸다.[9] 이 시기 모임과 매체의 이름에 이반이 들어간 예는 다음과 같다.
| 때 | 이름 |
|---|---|
| 1996년 | 서울대학교 동성애자 모임 마음003의 대동제 「이반문화제」 자료집[9] |
| 1996년 5월 | 대구·경북 지역 동성애자 모임 대경회. 대구경북지역이반모임의 준말[10] |
| 1998년 8월 | 친구사이가 펴낸 『청소년 이반신문』[11] |
| 1998년 10월 | 천리안 동성애자 동호회가 정식 동호회가 되면서 고친 이름 천리안 이반모임 퀴어넷[12] |
| 1998년 10월 | 청소년 이반을 위한 PC잡지 『LIQUID』 1호[11] |
| 1999년 3월 | 부산·경남 지역의 청소년이반모임 달팽이[11] |
3.2.2000년대
2000년대에는 이반이 통신 동호회를 넘어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적극 쓰였다.[1] 1999년 화랑으로 시작한 게이 사이트가
2000년 이반시티로 이름을 바꿨고,[11] 2002년에는 게이 포털 해피이반이 문을 열었다. 언론도 이 말을 옮겼다.
2002년 8월 한국일보는 해피이반을 소개하면서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이반'으로 자칭"한다고 썼고,[13] 같은 달
아이뉴스24는 기사 끝에 이반을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부르는 말로 풀어 두었다.[14]
온라인 공간은 이반 사이트라고 불렀다. 2003년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사이버 이반 문화, 어떤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한국의 이반 사이트들이 섹슈얼리티에 관한 말을 배우는 학교 노릇을 한다고 썼다.[15] 2007년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동성애자 커뮤니티 안에서 동성애자, 게이, 레즈비언이라는 말보다 이반이 더 흔히 쓰인다고 적었다.[4]
3.3.2010년대 이후
2010년대 이후로는 쓰임이 확실히 줄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사전은 이 말의 역사를 2000년대 초반 논쟁적으로 쓰인
팬픽이반, 순수이반 같은 말과 이반시티라는 사이트 이름에서 돌아볼 수 있다고 적는다.[1]
4.쓰임
4.1.이름에 남은 말
이반은 게이 사이트와 모임의 이름에 가장 오래 남았다. 이반시티와 해피이반이 이름에 이 말을 썼고, 우리반닷컴은 사이트 제목에 "게이 이반 커뮤니티"를 내걸었다. 다음 카페 히즈러브스토리는 2010년대 후반까지 카페 설명에 "남성이반카페"를 적었다. 게이바를 이반업소라고 부르기도 했다(게이바).
4.2.파생어
| 말 | 뜻 |
|---|---|
| 기혼 이반 | 여성과 결혼한 상태에서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사람. 게이 커뮤니티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점차 밀려났다[16] |
| 팬픽이반 | 남성 아이돌의 동성애 팬픽을 읽고 나누면서 자신을 이반이라 부른 10대. 당시 청소년 성소수자 모임들은 이들을 유행성 이반이라 부르며 선을 그었다[11] |
| 이반검열 | 학교가 동성애자 학생을 찾아내 징계하던 일. 머리 길이를 규제하는 일도 여기에 들었다[4][17] |
| 탈반 | 탈-이반의 준말. 성소수자였던 사람이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다시 정체화하거나, 이성과 결혼하면서 성소수자로서의 삶을 접는 일[6] |
2005년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이반검열」이라는 영상을 상영하고 토론회를 열었고,[11] 2016년에는 같은 제목의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17]
4.3.다른 말과의 관계
같은 처지의 사람을 돌려 부르는 말로는 이쪽도 있다. 2025년 판 게이 은어 모음은 이반을 일반에
대응해 성소수자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로, 이쪽을 성소수자가 자신들을 가리키는 말로 나란히 풀었다.[6]
5.오해
- 이반이 조선 말 종로의 이류 기생을 부르던
이패(二牌)가 변한 말이고 종로의 게이 커뮤니티에서 처음 쓰였다는 설이 있다. 그런 설이 제기된 적은 있지만 정확한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다.[1]
6.여담
7.관련 문서
각주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레즈비언상담소와 함께 풀어보는 59가지 궁금증』, 2007년 1월, 7쪽, 33쪽. ↩ ↩2 ↩3
-
민망통계, 「게이말 나들이 9.00판」, 2025년 2월 10일. ↩ ↩2 ↩3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국성적소수자사전』,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한동협)」. ↩
-
「벽을 허물고」, 『또하나의 사랑』 3호, 1996년 4월 13일, 30쪽. 「파리는 불타고 있다: 건강하고 주체적인 이반 문화의 정립을 위한 물음들」, 『마음003: 서울대학교 대동제 이반문화제 자료집』, 1996, 9쪽. 친구사이 소식지, 「시간 사이의 터울 #7: 게이 커뮤니티 운동 약사, 1995~2000」, 2015년 12월 31일에서 재인용. ↩ ↩2
-
친구사이 소식지, 「미완의 인간이 미완의 인간에게: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 약사(1997-2007)」, 2016년 5월 20일. ↩ ↩2 ↩3 ↩4 ↩5 ↩6
-
한국일보, 「동성애자 대상 벤처 등장」, 2002년 8월 20일. ↩
-
아이뉴스24, 「[화제] 동성애 전문 커뮤니티 사이트 오픈」, 2002년 8월 12일. ↩ ↩2
-
이송희일, 「사이버 이반 문화, 어떤 가능성」, 친구사이 소식지 게시 2003년 10월 17일. 이화여대 대학원 신문에 실은 글이다. ↩
-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 『친구사이 소식지』 99호, 2018년 9월 30일. ↩
-
친구사이 소식지, 「[기고] 연극 〈이반검열〉 관람 후기」, 2016년 8월 19일.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