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게이 공간마지막 수정 · r1

제주

게이[ 펼치기 ]

1.개요

제주 게이 공간은 제주시 원도심인 탑동과 칠성로 일대에 모인 게이 술집과, 그곳을 드나드는 게이 남성들이 만든 관계망을 이른다. 2023년 12월 기준으로 제주 전체의 게이 술집은 여덟 곳이었고, 모두 이 일대에 서로 멀지 않게 자리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통틀어 게이 손님을 받는 술집은 이곳에만 있었다.[1]

여기서 게이 술집은 게이 손님을 상대로 영업하는 바, 가라오케, 술집을 함께 이른다. 주말이면 하루 50명 안팎의 손님이 여덟 곳을 오간다.[1] 서울의 종로나 이태원보다 규모가 훨씬 작고, 드나드는 사람들이 대개 서로를 안다.

2.위치

탑동은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바닷가 마을로, 행정구역 이름은 아니다. 돌탑을 쌓은 아래쪽에 생긴 마을이라 탑알, 탑바리라고도 불렸다. 1985년부터 앞바다를 메우기 시작해 1991년 12월 매립지가 준공됐다.[2] 칠성로는 일도1동의 칠성1로에서 칠성2로까지 435m 이어지는 길이다. 일제강점기 제주의 이름난 상점이 거의 이 길에 자리 잡아 「제주 상권의 원조지」로 꼽힌다.[3]

이 일대는 조선시대 관청인 관덕정이 있는 제주의 가장 오래된 도심, 곧 원도심이다. 칠성로는 제주항과 가까워 바깥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왔고, 일제강점기에 카페와 다방이 처음 생긴 곳이기도 하다. 1970년대까지 제주의 중심가였지만 신제주 개발 이후 쇠퇴했다.[1] 게이 술집이 실제로 자리한 곳은 사전이 정의하는 탑동·칠성로의 범위와 꼭 맞지는 않는다.[1]

기와지붕을 얹은 관덕정 정자와 그 앞의 넓은 돌바닥 광장. 왼쪽으로 차도와 상가 건물이 보인다
제주시 원도심의 관덕정과 앞길, 2013년 1월 4일. 사진: Thddbwnd,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게이 술집이 이곳에 모인 이유로 연구 참여자들은 호텔이 많아 묵기 편하고, 큰 재래시장이 가까워 먹을 것이 많고 오가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들었다. 한 업주는 칠성로를 옛 이름 칠성통으로 부르며 "번화한 거리와 음탕한 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말했다.[1]

3.역사

3.1.2000년대

한 연구 참여자가 기억하는 가장 이른 자리는 제주항 서부두 근처의 「화개장터」다. 일반 손님과 게이들이 한곳에서 술을 마시던 곳으로, 곧 문을 닫았다. 그 뒤 2000년대 초 단란주점 「썬」이 문을 열었고, 탑동에 「밀물」 같은 가게가 하나둘 뒤를 이었다. 술집들은 처음부터 바, 가라오케, 소주를 파는 술집처럼 서로 다른 모양으로 영업을 시작했다.[1] 제주에서 처음 생긴 게이 술집이 성매매 업소가 모인 거리 근처였다고 말한 업주도 있다.[1]

한 업주는 그때 광고를 내려면 『보릿자루』라는 이반 잡지에 한 달 3만 원을 냈다고 회고했다. 혼자 영업할 때는 손님이 많아야 세 테이블이었는데, 술집이 세 군데로 늘자 가게마다 세 테이블씩 찼다. 그는 "요새는 모르는 애들이 너무 많아"라고 덧붙였다.[1]

같은 무렵 탑동은 유흥가로 붐볐다. 1997년 탑동에 문을 연 「2002나이트클럽」은 최대 호황기를 누리다 2007년 폐업했고, 건물은 2020년 모두 헐렸다.[4] 연구는 원도심이 중심가의 지위를 잃어 가던 바로 그때, 큰길에서 한 블록 뒤에 게이 술집이 자리 잡았다고 본다. 쇠퇴하는 옛 도심에 게이 업소가 들어선 모습은 서울 종로3가와 닮았다.[1]

3.2.2010년대 이후

2017년 10월 28일 제주시 신산공원 일대에서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주제는 제주어로 「오세요」를 뜻하는 「퀴어옵써예」였다. 제주시는 장소 사용을 허가했다가 반대 민원을 이유로 취소했고, 법원이 축제 전날 조직위원회의 손을 들어줘 행사가 열렸다. 같은 날 반대 단체 10여 곳이 제주시청 앞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5]

축제를 준비하면서 조직위원회는 성소수자 자영업자들에게 포스터를 붙여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한 가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반만 상대로 장사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6] 2023년 연구의 참여자들은 모두 제주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겠느냐는 물음에 부정적으로 답했다.[1]

4.이용자층

손님에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와 육지에서 옮겨 온 사람이 섞여 있고, 일 때문에 주기적으로 제주에 오는 육지 사람도 있다. 연구 참여자의 나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였다.[1] 참여자들은 술집이 주로 찾는 손님의 나이대로 나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년층이 모이는 술집에 장년을 좋아하는 20대가 찾아오고, 젊은 손님이 하룻밤에 여러 곳을 돌기도 해서 그 경계가 딱 지켜지지는 않았다.[1]

술집은 바, 가라오케, 음식과 소주를 파는 술집으로 나뉜다. 가라오케는 노래방과 달리 트인 홀 한쪽 벽에 무대와 노래 기계를 두고, 손님이 반주를 주문해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곳이다.[1] 한 가라오케 업주는 그 전의 원샷바 시절을 떠올리며, 5,000원짜리 맥주 한 잔으로도 놀 수 있어 20대 초반이 많이 모였고 손님의 70~80%가 20대였다고 말했다.[1]

손님 수가 적어 체형이나 외모 취향별로 나뉜 술집을 꾸리기는 어렵다. 한 업주는 베어 전용 바를 계획했지만, 손님들은 그런 기획과 상관없이 아는 사람을 따라 드나들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서로 아는 사이라 이태원 같은 게이클럽도 운영하기 어렵다.[1]

관광객이 많은 섬이지만 게이 술집은 관광 경기를 덜 탄다. 한 업주는 일반 술집에는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지만 게이 술집은 한정된 손님이 꾸준히 찾는다고 말했다. 업주들은 관광객을 겨냥한 홍보나 행사를 따로 기획하지 않았다.[1]

5.문화

5.1.궨당

궨당은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어다. 괸당으로도 적는다.[1] 한 제주 출신 연구 참여자는 궨당 문화를 "세 다리만 건너면 모두 친척이고 서로 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참여자는 술집에서 이름과 나이만 나눠도 어느 집 아이인지, 어디 사는지 윤곽이 다 나온다고 말했다.[1]

이 감각은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제주 출신의 한 게이 남성은 2012년 인터뷰에서 "제주도가 되게 좁잖아요. 섬이고 그 안에서 너무 아우팅의 위험이 높아서 두려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은 육지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7] 연구 참여자 가운데에도 제주에서 다른 게이를 만나기를 피하다가 서울에서 처음 오프라인 활동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1]

제주만의 일은 아니라는 말도 있다. 2017년 제주의소리 대담에서 기자가 제주를 「괸당문화」로 얽힌 사회라 커밍아웃이 쉽지 않겠다고 묻자,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은 "딱히 제주라고 해서 어려운 건 아니다. 어딜 가든 본인이 속한 사회는 다 좁다"고 답했다. 다만 그도 제주에는 성소수자임을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6]

5.2.데이팅 앱

제주의 데이팅 앱에는 얼굴 사진을 올린 사람이 매우 적고, 자기를 알릴 정보도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연구 참여자들은 육지에서 옮겨 온 사람보다 토박이가 사진과 정보를 더 감춘다고 말했다.[1]

앱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거의 반드시 나오는 말이 "도민이세요?"다. 여기서 도민은 제주 토박이를 뜻한다. 상대가 토박이라고 하면 만나기를 꺼리기도 한다. 토박이끼리 만나는 일은 같은 게이 사이라도 주변에 아웃팅되는 통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서울의 앱에서는 이렇게 고향을 묻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토박이 게이는 되도록 다른 지역 출신을 만나려 한다.[1]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제주 출신 게이를 인터뷰한 책에는 "제주에서 바라봤을 때 종태원은 정말 아메리칸드림 같은 느낌이었어요"라는 말이 실렸다.[8] 종태원은 종로와 이태원을 합친 말이다. 연구 참여자 가운데에는 주말마다 서울에 갔다가 돌아오면 허탈해 결국 발길을 끊고 제주의 술집을 찾아 나섰다는 사람도 있고, 한때 매주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다녔지만 "내가 사는 데가 아니니까" 누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다.[1]

5.3.술집 안의 관계

술집에 처음 들어서기가 가장 어렵다. 한 업주는 "한 번이 힘든 거지, 두세 번은 쉽다고"라고 말했다. 술기운에 용기를 내 오는 손님도 있고, 사흘 동안 주변을 살핀 뒤에야 들어온 손님도 있었다.[1] 한 번 드나들기 시작하면 여러 술집을 오가며 사람을 사귄다. 혼자 온 손님끼리 자연스럽게 합석하고, 통성명을 하지 않은 사이라도 자주 마주치면 목례를 나눈다.[1]

술집은 소개와 보증의 자리이기도 하다. 한 참여자는 지금의 애인을 사장의 소개로 만났다. 다른 참여자는 앱으로 만나면 대화만 하다 흐지부지되거나 약속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 일이 잦은데, 술집 사장이나 직원이 연결해 주면 생김새와 나이를 어느 정도 "보증"해 주니 편했다고 말했다.[1]

연구는 이 술집들이 장사하는 곳이면서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처럼 움직인다고 본다. 가장 싼 술을 마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그 관계망에 들 수 있고, 돈보다 외모, 다정한 말투, 유머 감각 같은 매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1] 한 손님은 술집이 한정돼 있으니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며, 가라오케 입구에서 들리는 노래만으로 누가 와 있는지 안다고 말했다.[1]

업주들도 서로 조심한다. 여덟 곳 사이에서는 소문이 아주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업주들은 말과 행동을 조심해 평판을 지킨다. 업주끼리 단체 채팅방은 없지만, 일찍 문을 닫거나 쉬는 날에는 다른 가게에 가서 "술을 팔아주면서" 사이좋게 지낸다.[1]

5.4.도민과 육지 사람

육지에서 옮겨 온 한 참여자는 제주 사람들이 육지 사람을 하룻밤 상대로 여기고 오래 만날 상대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 찾은 술집의 업주와 오래 알고 지냈고, 연구자가 지켜본 날에도 다른 테이블 손님들과 인사를 나눴다.[1] 연구자 역시 처음 현장에 간 날 가라오케 문을 열자마자 단체석 손님에게서 합석을 제안받았다. 연구는 이런 환대가 서로를 다 아는 좁은 관계망의 답답함과 새 사람에 대한 갈망에서도 나온다고 본다.[1]

6.관련 문서

각주

  1. 신경준, 「섬-소수자의 연결된 삶 만들기: 제주시 게이 술집의 사례를 통하여」, 『지역과 세계』 49권 1호, 2025. 2023년 3월부터 12월까지 제주시 게이 술집에서 참여관찰과 심층면담을 한 인류학 연구다. ↩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제주문화대전, 「탑동」. ↩

  3.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제주문화대전, 「칠성로」. ↩

  4. 제주의소리, 「2002-돔나이트 줄줄이 철거...옛 관광나이트 건물도 매각」, 2024년 12월 5일. ↩

  5. 한국일보, 「제주서도 '무지개빛' 퀴어축제 열렸다」, 2017년 10월 29일. ↩

  6. 제주의소리, 「퀴어는 동성애만? 남성, 여성 아닌 다양한 정체성 존재」, 2017년 11월 12일. ↩ ↩2

  7. 「33 서진석 : 뭍으로 나온 섬소년」, 친구사이 커밍아웃 인터뷰, 2012년 8월 8일. ↩

  8. 남선미, 『유학생』, 인공위성+82, 2022, 146쪽. 신경준, 「섬-소수자의 연결된 삶 만들기」에서 재인용. ↩

7.플레이스

바

1

리비전 1개 · 기여자 1명역링크RAW

이 문서는 별도 표시가 없으면 CC BY-NC-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자 목록은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