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펼치기 ][ 접기 ]
1.개요
보갈은 한국의 남성 동성애자가 스스로나 서로를 부르던 은어다. 성매매 여성을 낮잡는 갈보를 뒤집은 말로, 1970~80년대
종로를 중심으로 게이 남성들이 서로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조와 비하가 함께 섞인 말이다.[1]
예전에는 오늘날의 게이만이 아니라 여장 남자와 트랜스젠더 여성까지 아울러 가리켰다.[2] 1990년대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시작되면서 이반이 이 자리를 넘겨받았고,[3]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쓰임이 크게 줄었다.[1] 게이를 낮잡는 말의 하나로 게이 은어에 든다.
2.명칭
갈보는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4] 이 말의 어원으로는 빈대를 뜻하는 갈(蝎)에서 왔다는
설과 미국 배우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의 이름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2] 보갈은 이 말의 두 음절 순서를 바꾼 것이다.
언제부터, 누가 쓰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5]
왜 하필 이 말을 뒤집었는지에 대해서는 1990년대 말 게이 잡지에 두 가지 풀이가 실렸다. 1998년 『버디』의 용어 해설은 동성애자임을 드러내기 더 어려웠던 시절, 만날 수 있는 상대가 몇몇으로 한정된 가운데 성관계가 복잡한 사람을 장난스레 이르던 말로 추정했다. 1999년 『버디』의 종로 은어 사전은 이 말이 "공인되지 못한 性의 외로움, 빈번한 섹스, 게토화된 공간의 축축함"을 뜻했다고 썼다.[2]
말이 생긴 자리를 종로의 지리에서 찾는 풀이도 있다. 친구사이의 용어 해설은 1970년대 사창가였던 낙원동이 재개발되고 그 자리에
게이바와 극장이 들어서면서, 동성애자들이 갈보를 뒤집어 스스로를 낮추는 말로 썼다고 적었다.[3]
종로3가는 성매매 집결지가 헐린 뒤 게이바가 생겨난 곳이다. 김대현은 성판매 여성과 게이·트랜스젠더 여성이 같은
현장을 공유했고, 이 공통점 위에서 두 은어가 섞여 쓰였다고 본다.[2]
표준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는 이 뜻의 보갈이 올라 있지 않다. 우리말샘에서 보갈을 찾으면 발음이 같은 복알(伏謁)만 나온다.
3.역사
3.1.1970년대
이 말이 활자로 남은 이른 예는 1972년 10월 『주간경향』의 기사 「서울 「보갈」족」이다. 기사는 동성애자를 고발하는 투로 쓰였고,
"「호모」 즉 「보갈」이란 은어로 통하는 그 세계"라고 적었다.[6] 기사는 서울의 「보갈」 무리를 서울역, 종로1가의
극장, 명동의 극장, 종로3가의 파고다극장, 퇴계로의 극장, 용산 여섯 군데로 나누었고, 극장에서 상대를 찾는 과정도
옮겼다(게이/크루징).[6]
이 기사의 보갈은 오늘날의 게이와 여장 남자, 트랜스젠더 여성을 함께 가리켰다. 용산 무리를 두고는 "주로 여장남자들"이라고 썼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같은 정체성의 이름이 1990년대에 들어서야 갈라졌기 때문이다.[2]
3.2.1980년대
전원근은 1980년대 남성 동성애자들이 동성연애자나 호모처럼 바깥에서 붙인 이름과 별개로 스스로를 보갈이라 불렀다고
본다.[5] 이 말에는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체념과 함께, 주변으로 밀린 섹슈얼리티를 공유한다는 동질감이 담겼다는
것이다.[5] 1993년 나온 한 동성애자의 수기는 이 시기의 삶을 "일반인들보다 두 배의 삶을 살아가는 보갈로서의 삶"으로
그렸다.[5]
같은 연구는 이 시기 대중잡지에 실린 낙원동 기사들이 아직 극장이나 게이바에 처음 나가 보지 못한 보갈들에게 거꾸로 장소를 알려
주는 노릇을 했다고 적는다.[5] 한편 보갈 집단 안에서는 점차 게이, 오까마로 불리던 트랜스젠더와 스스로를 구별하고,
HIV 감염인을 밀어내는 일이 깊어졌다.[5]
3.3.1990년대
친구사이의 용어 해설은 보갈이 1990년대 초반까지 힘을 쓰다가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시작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이반이 대신했다고 적었다.[3] 그렇다고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1994년 종로를 돌아본 한 회고는 당시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동성애자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못해 이쪽, 이반, 심지어 보갈까지 썼다고 기억한다.[7]
말을 바꾸려는 움직임은 업소에서도 보였다. 1999년 이반업소 정보지 『보릿자루』가 업주들에게 꺼리는 손님을 물은 설문에는 "'보갈'이 아니라 '이반'인 '인격체'라는 것을 너무 부정하는 고객들은 정말 싫다"는 답이 실렸다.[8]
3.4.2000년대 이후
2003년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1990년대 이전의 동성애자들이 극장과 공원을 돌며 이 말을 익히는 데에도 몇 달씩 걸렸다고 쓰면서,
인터넷으로 모인 청소년 세대에게 보갈, 꽃띠, 바지씨 같은 앞 세대의 은어는 "낡은 주문의 웅얼거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9]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사전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이 말의 쓰임이 많이 줄었다고 적는다.[1]
그래도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다. 2010년 친구사이 용어사전은 지금도 부정적인 뜻으로 가끔 쓰인다고 적었고,[10]
2015년 타임아웃 서울의 게이 용어 정리는 보갈을 게이를 통칭하는 말, 이반과 같은 뜻으로 소개했다.[11] 2018년 이후로는
종로3가의 게이 역사를 다룬 전시에 이 말이 다시 나왔다. 2019년 익선동 행사의 「종로이반전」은 보갈 편으로 시작해 이반, 게이로
이어졌고,[12] 2022년에는 「종태원보갈전」이라는 전시가 열렸다.[13]
4.쓰임
보갈은 바깥에서 붙인 이름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서로를 부르던 말이었다. 2018년 이 말을 행사 홍보에 쓴 주최 측은 이반도 퀴어도,
게이라는 말도 쓰이지 않던 때부터 "우리를 은폐하고 자조하기 위해 사용되던 은어"라고 설명했다.[14] 이송희일은 같은
말을 "피해망상적인 은어"라고 불렀다.[9]
세대에 따라 이 말을 듣는 감각도 달랐다. 1998년 시작한 서울퀴어영화제는 초기에 게이바로 포스터를 붙이러 갔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나이 든 게이들은 퀴어를 욕으로 여겼고, 보갈 같은 말은 욕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영화제 관계자는 회고했다.[15]
가리키는 범위는 지금의 게이보다 넓었다. 1970년대 기사의 보갈은 게이와 여장 남자를 함께 아울렀고,[2] 김대현은 2024년
글에서도 보갈을 "게이·트랜스젠더 여성이 자신을 가리키는 비어 가운데 하나"로 설명한다.[16] 그는 게이바에서 지금도 쓰는
"나 오늘 안팔렸어" 같은 말도 자신을 성매매 여성에 빗대는 같은 계보에 있다고 본다.[16]
5.파생어
| 말 | 뜻 |
|---|---|
| 보갈족 | 1972년 『주간경향』 기사가 동성애자 무리를 부른 말[6] |
| 숨은 보갈 | 동성애자 공동체에 나오지 않는 동성애자[17] |
| 보갈바 | 종로의 게이바. 1994년을 돌아본 글에 "창문이란 것이 없었던 종로의 '보갈바'"로 나온다[7] |
| 보갈삼거리 | 종로3가 낙원상가 입구 쪽 게이바가 몰린 작은 삼거리를 게이들이 부르던 이름[18] |
| 이조보갈 | 나이 많은 게이를 낮잡는 말. 이 술집은 이조보갈들만 있어처럼 쓴다[11] |
6.비판
이 말이 여성을 낮잡는 말에서 왔다는 점은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지적됐다. 2014년 친구사이 소식지의 한 칼럼은 보갈, 년 같은
말이 여성 비하적인 뜻을 떠올리게 한다고 썼다.[19]
이 문제가 크게 불거진 것은 2018년이다. 그해 5월 26일 열린 익선동 야간개장의 홍보 영상 끝에 보갈컬쳐라는 말이 들어가자, 이 말이
성판매 여성을 뜻하는 갈보를 비튼 말이라 여성혐오의 맥락을 지니므로 홍보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SNS에서 논쟁이 벌어졌다.[14] 이 논쟁으로 참여를 취소한 그룹도 여럿 있었다.[20] 주최 측은 행사 2주 전 종로3가의
보갈, 이반, 게이의 역사를 다룬 전시를 급히 마련했다.[14]
다른 방향의 비판도 있었다. 같은 해 친구사이 소식지의 한 기고는 보갈이라는 단어가 게이 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단순하게 통할 수 있는 말인지 물으며, 20~30대 중심이던 이 행사가 과거 종로 보갈의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졌다.[21]
이 말을 여성혐오로만 읽는 데 반대하는 쪽도 있다. 김대현은 보갈을 쓰는 게이를 곧 여혐 집단으로 보는 서사가 얄팍하고 그 안의 여러
논점을 망가뜨린다고 말했다.[22] 그는 성매매 집결지와 게이 게토가 겹친 종로·이태원에서 보갈과 갈보가 비슷한 낙인을 나눠
가졌다고 보고, 문제는 여혐 단어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당사자가 자기 문화의 젠더·섹슈얼리티적 함의를 알고 그에 맞는 정치의식을
가지느냐에 있다고 썼다.[23]
7.여담
- 2023년 한 성소수자 노후 포럼 참관기는 태국어
카토이가 트랜스젠더 여성과끼순이게이를 함께 아우르는 말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보갈과 비슷한 범주의 어휘라고 적었다.[24]
8.관련 문서
각주
-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 『친구사이 소식지』 99호, 2018년 9월 30일. 『주간경향』, 『BUDDY』 등의 기사를 인용한 글이다. ↩ ↩2 ↩3 ↩4 ↩5 ↩6
-
친구사이 용어사전, 「이반, 퀴어Queer」, 2003년 12월 25일. ↩ ↩2 ↩3
-
전원근, 「1980년대 『선데이서울』에 나타난 동성애 담론과 남성 동성애자들의 경험」, 『젠더와 문화』 8권 2호, 2015, 144쪽, 155~159쪽. ↩ ↩2 ↩3 ↩4 ↩5 ↩6
-
『주간경향』 203호, 「고발: 마짜 떼자 전차, 남자끼리의 그 징그러운 서울 「보갈」족」, 1972년 10월 22일, 30쪽.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에서 재인용. ↩ ↩2 ↩3
-
친구사이 소식지, 「내가 기억하는 소식지 기사 BEST: 오프라인 소식지·웹진 시절(1994-2008)」, 100호, 2018년 10월 31일. ↩ ↩2
-
「이런 고객 소금 뿌려」, 『보릿자루』 9호, 1999년 7월 1일, 12쪽. 친구사이 소식지, 「이태원 게이클럽의 어제와 오늘」, 2016년 7월 18일에서 재인용. ↩
-
이송희일, 「사이버 이반 문화, 어떤 가능성」, 친구사이 소식지 게시 2003년 10월 17일. ↩ ↩2
-
타임아웃 서울, 「일반인을 위한 게이 용어 총정리」, 2015년 6월 21일. ↩ ↩2
-
친구사이 소식지, 「익선동 야간개장 참관기」, 107호, 2019년 5월 31일. ↩
-
친구사이 소식지, 「2022 야간개장 참관기」, 144호, 2022년 7월 4일. ↩
-
친구사이 소식지, 「익선동 야간개장 참관기」, 95호, 2018년 5월 31일. ↩ ↩2 ↩3
-
친구사이 소식지, 「서울퀴어영화제 20주년 인터뷰 1: 서울퀴어영화제와 무지개영화제」, 2017년 11월 30일. ↩
-
김대현, 「종로3가 게이커뮤니티의 역사」. 친구사이 소식지,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덴버캠퍼스 정치학과 종로3가 답사」, 167호, 2024년 5월 30일에 실린 글. ↩ ↩2
-
이정우, 「유쾌한 동성애, 정체화되지 않는 이반, 그리고 또다시 육체의 범주에 발목 잡히기」, 2001년 작성, 친구사이 웹진 게시 2003년 10월 7일. ↩
-
친구사이 소식지, 「주관적 게이 용어 사전 #04: 뽈록이」, 2014년 4월 18일. ↩
-
친구사이 소식지, 「모임(MOI:M) 인터뷰 3: 익선동 야간개장(2018~) 기획」, 107호, 2019년 5월 31일. ↩
-
친구사이 소식지, 「Seoul For All #7: 익선동에 관한 네 가지 질문들」, 96호, 2018년 6월 29일. ↩
-
친구사이 소식지, 「종로를 노래하는 법: 2019 지보이스 정기공연 '선게이서울'」, 121호, 2020년 8월 3일. 김대현(터울)의 발언. ↩
-
김대현, 「게이와 페미니즘」, 『문화/과학』 104호, 2020, 146~149쪽. 친구사이 소식지,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10주년 인터뷰 2: 성소수자 인권운동 최초의 점거농성」, 140호, 2022년 3월 2일에서 재인용. ↩
-
친구사이 소식지, 「성소수자의 노후 준비, 어떻게 하고 있나? 참관기」, 159호, 2023년 10월 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