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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바

게이 남성을 주된 손님으로 받는 술집을 두루 이르는 말입니다. 원샷바, 소주방, 가라오케, 클럽으로 나뉘는 형태와 이용 방식, 종로와 이태원과 지방의 차이, 1960년대부터의 역사를 담았습니다.

분류
게이바|나이트라이프

게이바 한눈에

옛 이름
이반업소
주요 형태
원샷바, 소주방, 가라오케, 클럽
서울의 중심
종로3가 낙원동, 이태원

게이바라는 말

게이바는 게이 남성을 주된 손님으로 받는 술집을 두루 이르는 말입니다. 잔술을 파는 작은 바, 소주방, 노래를 부르는 가라오케, 춤을 추는 클럽이 모두 여기에 들어갑니다. 술이 아닌 것을 파는 찜방이나 DVD방은 게이 업소라는 더 넓은 말로 묶습니다.

옛 기록을 읽을 때는 말뜻이 달랐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1980년대에는 남성 동성애자를 호모라고 불렀고, 게이는 오늘날의 트랜스젠더 여성을 가리켰습니다. 1990년대 말 이반이라는 게이 은어가 퍼지면서 게이바를 이반업소라고도 불렀습니다.

형태별 차이

게이 커뮤니티 사이트의 업소 게시판은 게이바를 BAR, 주점·소주방, 가라오케, CLUB 넷으로 나눕니다. 바와 가라오케를 겸하는 곳도 있습니다.

형태하는 일자리
원샷바술을 잔 단위로 팔고, 카운터 안의 바텐더와 이야기하며 마심바 카운터
소주방·주점소주와 맥주에 안주를 곁들임테이블
가라오케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름무대, 룸, 바 카운터
클럽입장료를 내고 춤을 춤플로어와 바

원샷바는 대화가 중심입니다. 2015년 타임아웃 서울은 원샷바와 라운지바에 말솜씨 좋은 마스터(카운터를 맡은 주인이나 바텐더)가 있어 혼자 가도 겁낼 필요가 없다고 소개했습니다.

가라오케는 게이바의 오래된 형태입니다. 1995년 이전 종로와 신당동의 게이 업소는 대개 단란주점 형식이었고, 1996년 이태원에 서양식 게이클럽이 생겼을 때 반긴 쪽은 가라오케식 게이바에 익숙하지 않던 젊은 게이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순천, 천안, 전주, 광주 같은 지방 도시에 게이 가라오케가 있습니다.

클럽과 바의 경계는 처음부터 흐릿했습니다. 1995년 이태원에 문을 연 파슈는 기사에 따라 게이클럽으로도, 게이바로도 적혀 있습니다.

찾아가고 주문하기

게이바는 간판으로 찾기 어렵습니다. 2007년 발표된 낙원동 연구의 조사에서 업주의 83.3%가 게이 업소라는 표시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무지개 표시를 밖에 둔 곳은 6곳 정도였습니다. 1층보다 지하나 2, 3층, 찾기 어려운 골목에 자리한 곳이 많습니다. 손님이 가게를 알게 된 경로는 친구 소개와 업주와의 친분이 73.1%였습니다.

술을 시키면 기본안주가 함께 나오는 곳이 많습니다. 업소 소개 글에는 소량 과일과 과자, 과일 7종과 마른안주처럼 기본안주 구성을 적어 두기도 합니다. 혼자 오는 손님을 위한 바텐(바 카운터 자리)을 내세우는 곳도 흔하고, 부산 범일동의 한 가라오케는 "범일동을 처음 나오시는 분"을 직접 불러 사장과 직원이 챙긴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낙원동 게이바는 대부분 저녁 6시 반에서 8시 사이에 문을 열고 9시 이후에 붐볐습니다. 손님이 가장 많은 날은 금, 토, 일요일이고, 손님들은 하룻밤에 1곳에서 3곳을 옮겨 다닙니다. 연구는 게이바를 고르는 기준이 시설보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라고 봤습니다.

클럽은 2012년 이태원 보도 기준으로 입장료가 1만 원이었고, 종이 티켓을 손목에 차고 들어가 안쪽 바에서 음료를 따로 샀습니다. 금, 토, 일요일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가 가장 붐볐습니다. 지금 입장료는 업소와 행사마다 달라 공지로 확인해야 합니다.

게이만 받는 곳, 모두 받는 곳

낙원동 게이바는 대부분 게이 손님만 받습니다. 2023년 낙원동의 게이바 프렌즈 사장은 "낙원동엔 100여개가 넘는 게이 가게가 있지만 아직 95% 이상은 게이만을 손님으로 받으며 멤버십으로 운영된다"고 말했습니다.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손님이 많아서입니다. 이 가게는 2004년 문을 열어 2022년 이성애자 손님도 받는 방식으로 바꿨고, 낙원동에서는 처음이었습니다.

게이가 아닌 친구와 함께 가려면 그 가게가 게이 손님만 받는 곳인지 먼저 알아보는 편이 낫습니다. 익선동이 알려진 뒤로는 낙원동을 찾는 이성애자가 늘어, 게이 손님들이 밀려난다고 느낀다는 목소리가 2019년 보도에 실렸습니다.

이태원은 성격이 나뉩니다. 2012년 보도는 이태원 게이바를 조용히 대화하는 곳으로, 이성애자는 드나들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반면 2015년 소개 기사는 클럽이 모인 게이힐을 "일반과 이반이 한데 어울려 춤추는" 곳이라고 불렀습니다.

종로, 이태원, 지방

지역자리 잡은 때모습
종로3가 낙원동1970년대원샷바, 소주방, 가라오케. 100여 곳 (2023년 업주 증언)
이태원1990년대 중반클럽 중심. 30여 곳 (2012년 보도)

종로의 역사는 종로 게이 공간의 역사에, 이태원은 이태원 게이 공간의 역사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서울에는 이 밖에 신림에도 소주방과 가라오케가 여럿 있습니다.

지방에는 도시마다 게이바가 모인 골목이 있습니다. 부산 범일동, 대구 동대구, 대전 대흥동, 광주 대인동이 대표적입니다. 게이 잡지 『BUDDY』 편집팀이 만든 전국 게이바 연락처에도 인천, 부산, 대전, 대구, 광주, 마산과 수원, 성남, 안산 같은 경기 도시가 올라 있습니다.

손님층과 세대

이태원 게이 공간은 1990년대 중반 20대와 30대 초반을 중심으로 생겼습니다. 1996년 클럽이 문을 연 뒤로 20대 초반 손님이 크게 늘었습니다. 2007년 연구는 PC통신과 인터넷을 쓰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갈리면서 종로는 윗세대, 이태원은 젊은 세대 중심으로 나뉘었다고 봤습니다.

가게 단위로 보면 연령대는 섞여 있습니다. 업소 소개 글에는 "20대~50대의 고객이 함께 공존하는", "30대 40대 50대가 함께 하는", "30대, 40대가 주된 조용한 바", "2030 이반 가라오케"처럼 주 손님 나이대가 적혀 있어, 처음 갈 곳을 고를 때 기준이 됩니다.

짧은 역사

1960년대을지로 인쇄소 골목에 게이바 「아담」
1974년창덕궁 앞에 「심」, 종로 지역 첫 게이바
1982년야간통행금지 해제 뒤 게이바가 크게 늘어 1980년대 종로에 50에서 60곳
1990년심야영업 제한이 다시 시행돼 자정 넘어 몰래 영업
1995·1996년이태원에 파슈, 스파르타쿠스가 문을 열며 클럽 시대 시작
1999년유흥업소 심야영업 제한 해제
2000년대이태원 업소가 줄고 낙원동으로 집중, 2005년 약 85곳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

게이바를 두고 흔히 퍼진 이야기 가운데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것들입니다.

  • 「심」이 한국 최초의 게이바라는 이야기. 1960년대 을지로의 게이바 「아담」을 적은 1998년 잡지 기사가 있어, 「심」은 종로 지역의 첫 게이바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 처음 온 손님에게 직원이 알고 왔는지 묻고, 모르고 들어온 사람은 내보낸다는 이야기. 찜방에서는 이런 질문이 보도됐지만 게이바를 두고 확인된 기록은 없습니다
  • 종로는 30대 이상, 이태원과 신림은 20대 초반만 간다는 식의 구분. 20대부터 50대까지 함께 받는다고 소개하는 가게가 적지 않습니다
  • 이태원이 뜨면서 종로 게이바가 줄었다는 이야기. 2000년대에 줄어든 쪽은 이태원이었습니다
  • 종로 게이바 안주는 1만 원을 넘지 않는다는 식의 가격 이야기. 요금을 공개한 곳이 적어 확인할 수 없습니다
  • 파슈가 사장이 돈을 들고 사라져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 2012년 보도도 풍문으로만 전합니다

게이바를 다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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