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펼치기 ][ 접기 ]
1.개요
게이 잡지는 게이 남성이 만들고 읽는 잡지와 소식지를 두루 이르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동성애자 단체와 PC통신 동호회의 소식지로 시작했고, 1998년에는 서점에서 파는 동성애 전문지 『버디』와 게이바에 무료로 돌던 업소 정보지 『보릿자루』가 나왔다.[1][2] 두 잡지는 2004년 무렵까지 모두 종간했다.[3][4]
1980년대까지 한국에는 일본처럼 동성애자가 펴내고 구독하는 잡지가 없었다.[5] 종이 잡지가 사라진 뒤 업소 광고와 만남은 웹사이트로, 소식지는 웹진으로 옮겨 갔다.[6] 단체 소식지 가운데 친구사이 소식지의 역사는 친구사이 문서에 있다.
2.역사
2.1.1980년대
게이가 직접 만든 잡지는 없었고, 게이가 모이는 곳의 정보는 오히려 대중잡지 기사에서 얻기도 했다. 1980년대
『선데이서울』 같은 대중잡지는 동성애자를 경악스러운 현상으로 다루면서 P공원, 서울 N동의 P극장처럼 장소를
구체적으로 적었고, 이런 기사는 동성 상대를 찾던 독자에게 정보가 됐다. 한 게이는 1988년 가을 잡지 기사를 통해
종로를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가 읽은 잡지에는 종로3가 극장에 호모들이 모인다는 이야기와 낙원동 일대 술집 기사가
실려 있었다.[5]
2.2.1990년대
첫 매체는 단체와 동호회의 소식지였다. 1994년 1월 25일 「초동회 소식지」가 나왔고, 이것이 「친구사이 소식지」로 이어졌다. 지면에는 활동 소식과 함께 게이 업소 광고와 애인이나 파트너를 찾는 구인 글이 실렸다.[6] 1994년 2월 문을 연 이태원의 디스코텍 「파슈」도 친구사이 소식지에 광고를 냈다.[2] 하이텔 동호회 또하나의 사랑은 1995년 12월 『열린마음』을 냈고, 1996년 4월 3호부터 제호를 『또하나의사랑』으로 바꿨다.[2]
1998년에는 여러 매체가 한꺼번에 나왔다. 2월 『버디』가 창간했고, 10월 1일 청소년 이반을 위한 PC잡지 『LIQUID』 1호가 나왔다. 친구사이의 『청소년 이반신문』도 1998년 8월호부터 확인된다.[7] 같은 10월 업소 정보지 『보릿자루』가 창간했다.[2]
2.3.2000년대
1990년대 후반 화랑(지금의 이반시티), 엑스존, TG넷 같은 게이 웹사이트가 생기면서 소식지에 실리던 업소 광고와 만남은 이들 사이트로 옮겨 갔다. 인쇄물로 나오던 성소수자 잡지와 소식지도 이 무렵 빠르게 웹진으로 바뀌었다. 친구사이 소식지는 2001년 3월호를 끝으로 인쇄를 멈췄다.[6]
『버디』는 2003년 12월 24호를 끝으로 종간했고,[1] 『보릿자루』는 2004년 여름 47호까지 나왔다.[4] 『버디』 편집장은 종간사에서 한국이 인터넷 중심 사회로 바뀐 데다 동성애자들이 여전히 동성애 관련 책을 사서 집에 들고 가기를 어려워한다고 적었다.[8]

2007년 이반시티가 종이 잡지 『GET』을 시작했다. 공동대표는 『보릿자루』와 『버디』가 모두 없어져 이반을 위한 오프라인 잡지가 없던 때라 만들었다고 말했다. 광고가 붙지 않아 매번 적자였고, 무가지로 돌리다 계간지로 바꾼 뒤 10호를 끝으로 웹진으로 돌아섰다.[9] 친구사이 용어사전은 『GET』이 2010년 폐간했다고 적는다.[10]
3.종류
| 이름 | 창간 | 발행처 | 형태 | 종간 |
|---|---|---|---|---|
| 친구사이 소식지 | 1994년 1월 | 친구사이 | 단체 소식지 | 2001년 3월 인쇄 중단, 웹진으로 이어짐[6] |
| 『열린마음』·『또하나의사랑』 | 1995년 12월 | 하이텔 동호회 또하나의 사랑 | 통신 동호회 소식지 | |
| 『버디』 | 1998년 2월 | 도서출판 해울 | 서점 판매 정기간행물 | 2003년 12월, 24호 |
| 『LIQUID』 | 1998년 10월 | 청소년 대상 PC잡지 | ||
| 『보릿자루』 | 1998년 10월 | 이반교회, 뒤에 보릿자루 | 업소 비치 무가지 | 2004년 여름, 47호 |
| 『GET』 | 2007년 11월 또는 2008년 1월 | 엘지비티코리아 | 무가지, 뒤에 계간지 | 2010년 |
3.1.버디
『버디』(BUDDY)는 1998년 2월 20일에 창간호를 낸 동성애 전문지다.[1] 친구사이 용어사전은 도서출판 해울에서 낸 한국 최초로 정식 출판 등록한 동성애 전문지로 소개한다.[3] 하이텔 또하나의 사랑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출판사를 만들어 펴냈고, 편집장은 한채윤이었다.[11][1] 퀴어락 전시는 첫 호가 1998년 3월에 나왔다고 적어, 창간 날짜와 한 달 어긋난다.[11]

게이와 레즈비언을 함께 다뤘다. 게이가 좋아할 화보와 레즈비언이 좋아할 화보를 양쪽 면에 나란히 실었고, 트랜스젠더 관련 기사도 전권에 걸쳐 44건을 실었다.[1] 월간지로 시작해 계간지, 한때 연간지가 됐다가 다시 계간지로 자리 잡으려 했다. 자본금은 300만 원이었다.[8]
잡지 밖의 활동도 했다. 1998년 봄 『버디』 편집팀이 전국 동성애자 단체에 공식 제안을 해 5월 대표자 연석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결의한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가 6월 29일 출범했다.[12] 2000년 첫 퀴어문화축제는 친구사이가 대학 모임들과 당시 『버디』 편집장에게 제안하면서 시작했다.[13] 2002년 『버디』를 만든 활동가들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를 세웠고, 종간호까지 이 단체가 발간을 이었다.[14]
종간 날짜는 자료마다 다르다. 2015년 친구사이 소식지는 2003년 12월 24일 24호로 종간했다고 적었고,[1] 친구사이 용어사전은 2004년 12월 24호로 종간했다고 적는다.[3] 국립중앙도서관은 해울이 2004년까지 낸 『버디』를 소장하고 있다.[15]
3.2.보릿자루
『보릿자루』는 1998년 10월 창간한 게이 업소 정보지다.[2] 1호는 1998년 10월 1일 이반교회가 낸 6쪽짜리 무료 인쇄물이었고,[16] 2004년에 나온 46호는 94쪽 책자였다.[17] 정식으로 등록한 출판물은 아니었지만 전국의 게이바에 배포돼 게이 커뮤니티의 『선데이서울』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한때 200쪽 가량까지 두꺼워졌다.[4] 발행인은 권동철이었다.[9]
극장, 게이바, 사우나, 클럽의 정보와 그곳을 다녀온 게이들의 후기를 그대로 실었다. 편집장은 2000년 인터뷰에서 창간호에 "욕을 먹을 것이다. 욕을 하려면 해라. 하지만 내가 이반으로서 지금 현재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그런 정보는 필요하다"라고 밝혔다고 말했다.[2]
3.3.GET
『GET』은 이반시티가 만든 잡지다. 공동대표 인터뷰에서는 2007년 11월 창간으로 나오고,[9] 친구사이 용어사전은 엘지비티코리아가 2008년 1월 월간지로 창간한 남성 동성애자 대상 라이프스타일 잡지로 적는다.[10] 처음에는 월간지를 계획했지만 인쇄비와 편집비를 광고로 메우지 못했다.[9]
4.내용
『버디』에는 게이 공간의 역사를 다룬 연재와 특집이 실렸다. 한 연재 필자는 극장, 공원과 터미널, 사우나의 역사를 여러 사람을 취재한 이야기로 엮었고, 이 글들은 게이/크루징과 찜방의 역사를 쓰는 자료가 됐다.
| 호 | 글 | 다룬 것 |
|---|---|---|
| 3호(1998년 4월) | 「한국 동성애 게토, 오욕과 오명의 연대기: 서 있는 사람들」 | 크루징 극장의 역사[18] |
| 5호(1998년 6월) | 「알아두어야 할 동성애 관련 용어」 | 은어 풀이[18] |
| 6호(1998년 7월) | 「박꽃 흐드러진 white saturday night: 게이바의 역사」 | 게이바의 역사[18] |
| 11호(1998년 12월) | 특집 「트랜스젠더를 알자」 | 트랜스젠더[1] |
| 16호(1999년 9월) | 특집 「청소년의 방: 동성애를 말하다」 | 청소년 성소수자[7] |
| 20호(2002년 5월) | 특집 「한국 동성애 커뮤니티 10년간의 연대기」 | 커뮤니티의 10년[19] |
| 22호(2003년 3월) | 「종로는 뿌리가 있어!」 | 1980년대 종로 게이바 사장 인터뷰[18] |
독자의 목소리도 실었다. 「독자가 편집자에게」 같은 독자 편지란이 있었고,[18] 13호(1999년 2월)는 지난 1년 동안 온 독자 편지를 분석한 특집을 실었다. 초창기 독자들이 청소년 기사가 없다고 거듭 요구한 끝에 16호부터 청소년 기사가 꾸준히 실렸다.[7] 업소 광고도 실렸다. 2001년 5월호에는 이태원 클럽 「ZIPPER」의 광고가 있다.[20] 『버디』 편집팀은 전국 게이바의 이름과 연락처, 위치를 정리한 문서도 만들었다.[21]
『보릿자루』는 업소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대부분의 게이바 광고를 싣고 PC통신에 올라온 글을 옮겨 실었다는 증언이 있다.[2] 1999년 7월 1일 9호는 제주를 뺀 전국 이반 업소 150여 곳의 업주를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22] 같은 기사를 업주 1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으로 적은 자료도 있다.[20] 2000년 2월 15호는 막 인기를 끌던 웹사이트 「화랑」을 소개했다.[9] 2000년 3월 16호의 이태원 업소 현황 조사는 게이클럽 문서에 있다.
5.유통
『버디』는 성소수자 전문지 가운데 처음으로 정식 유통망을 거쳐 전국 서점에 놓였다.[1] 창간 직후인 1998년 4월 경향신문사의 잡지 기사는 『버디』를 "화제 부르며 매진 사례를 일으킨 국내 최초의 동성애 전문 월간지"로 소개했다.[15] 1999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는 "동성애 전문지 버디로 오십시오!"라는 광고를 냈고,[23] 웹사이트 buddy79.com도 운영했다.[24]
무가지는 업소에 놓였다. 『보릿자루』는 전국 게이바에 배포됐고,[4] 업소는 이 잡지에 돈을 내고 광고를 실었다. 제주의 한 업주는 『보릿자루』 광고비로 한 달 3만 원을 냈다고 회고했다.[25] 『GET』도 업소에 무료로 배포됐다.[9] 친구사이는 종로와 이태원의 게이바와 클럽을 돌며 인쇄한 소식지를 나눠 줬다.[26]
6.문제점
6.1.청소년 유해 지정
1999년 2월 10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에 따라 『버디』를 청소년유해간행물로 지정했다. 당시 시행령의 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는 「동성애」가 들어 있었고, 이 문구는 2004년 4월 30일 시행된 개정 시행령에서 빠졌다.[7] 같은 기준으로 웹사이트 엑스존도 2000년 청소년유해매체물이 됐다.[7]
6.2.업소와 단체의 갈등
1990년대 인권운동 단체와 게이 업소는 잡지와 소식지를 두고 부딪쳤다. 이태원의 큰 게이클럽 「스파르타쿠스」는 동성애자가 드나드는 클럽으로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친구사이 소식지의 비치를 거부했고, 대학 동아리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일었다. 이태원의 한 업소 주인은 소식지를 나눠 주던 친구사이 회원들을 막으며 손님들이 소식지를 길에 함부로 버리고 단속이 심하다는 이유를 들었다.[2]
반대로 업소 정보를 가감 없이 실은 『보릿자루』는 인권운동 단체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편집장은 "저질 문화를 전파시키려고 한다. 그러면서 이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2]
6.3.재정
종이 잡지는 광고와 판매로 버텨야 했다. 『버디』는 자본금 300만 원으로 시작했고,[8] 『GET』은 광고를 유치하지 못해 매번 적자였다. 『GET』을 만든 이반시티 공동대표는 그때는 게이 잡지를 당당히 사서 보는 것 자체가 힘든 시절이었다고 말했다.[9]
7.여담
- 『보릿자루』 발행인은 2000년대 초 이반시티를 팔지 말고 함께 키우자고 제안했고, 이 일이 뒤에 공동대표가 되는 박사이먼이 이반시티 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9]
- 『버디』 편집장은 종간사에서 지하철 가판대에 시사 주간지와 나란히 동성애 잡지가 놓이는 날이 오면 복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적었다.[8]
8.관련 문서
각주
-
김대현, 「시간 사이의 터울 #6: 어느 게이가 바라본 성별 정체성, 잡지 『BUDDY』에 실린 트랜스젠더 관련 기사」, 『친구사이 소식지』, 2015년 10월 30일. ↩ ↩2 ↩3 ↩4 ↩5 ↩6 ↩7 ↩8
-
친구사이 소식지, 「시간 사이의 터울 #7: 게이 커뮤니티 운동 약사, 1995~2000」, 2015년 12월 31일. 『보릿자루』에 관한 증언은 박지훈, 「한국 퀴어 미디어의 역사와 발전」, 『한국 사회 미디어와 소수자 문화정치』,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332쪽에서, 편집장 인터뷰는 「Interview: 『보릿자루』」, 『또하나의사랑』 14호, 2000년 4월, 29쪽에서 재인용. ↩ ↩2 ↩3 ↩4 ↩5 ↩6 ↩7 ↩8 ↩9
-
친구사이 용어사전, 「버디 buddy」. ↩ ↩2 ↩3
-
전원근, 「1980년대 『선데이서울』에 나타난 동성애 담론과 남성 동성애자들의 경험」, 『젠더와 문화』 8권 2호, 2015. 1988년 회고는 김경민, 1993에서 재인용. ↩ ↩2
-
친구사이 소식지, 「친구사이 소식지의 역사와 호별총목차 (1994-2018)」, 100호, 2018년 10월 31일. ↩ ↩2 ↩3 ↩4
-
친구사이 소식지, 「미완의 인간이 미완의 인간에게: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운동 약사(1997-2007)」, 2016년 5월 20일. ↩ ↩2 ↩3 ↩4 ↩5
-
친구사이 웹진, 「동성애자 잡지 'buddy', 5년 만에 폐간」, 2004년 1월 3일. 『버디』 편집장의 종간사를 발췌해 옮긴 글이다. ↩ ↩2 ↩3 ↩4
-
친구사이 소식지, 「이반시티 공동대표 박사이먼님 인터뷰 1. 이반시티와 한국 인터넷의 동성애 검열」, 2017년 8월 31일. ↩ ↩2 ↩3 ↩4 ↩5 ↩6 ↩7 ↩8
-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최초의 정식 출판 잡지 〈버디〉」, 상설전시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소식지」. ↩ ↩2
-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 ↩
-
친구사이 소식지,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03: 자긍심의 절정을 보여주다」, 2014년 6월 27일. ↩
-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
-
국립중앙도서관, 「버디」 검색 결과. 소장 자료 『버디』(해울, 2004년까지, 청구기호 197.05-해938ㅂ)와 박홍규, 「Living: 세상이 달라진다! 화제 부르며 매진 사례를 일으킨 국내 최초의 동성애 전문 월간지 버디(BUDDY)」, 경향신문사, 1998년 4월 1일의 서지. ↩ ↩2
-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보릿자루 46호」. 발행처 보릿자루, 94쪽. ↩
-
김대현, 「종로3가 게이 게토와 게이커뮤니티의 위치」, 『친구사이 소식지』 99호, 2018년 9월 30일. 『BUDDY』 각 호의 글을 인용한 글이다. ↩ ↩2 ↩3 ↩4 ↩5
-
이서진, 「게이 남성의 장소 형성: 종로구 낙원동을 사례로」, 『지리학논총』 49호, 2007. ↩
-
친구사이 소식지, 「이태원 게이클럽의 어제와 오늘: 클럽 Le Queen/Looking-Star 사장 임찬혁님 인터뷰」, 2016년 7월 18일. ↩ ↩2
-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전국 게이바 연락처」. BUDDY 편집팀이 작성한 문서. ↩
-
친구사이 소식지, 「세상 사이의 터울 #3: 게토의 생식」, 111호, 2019년 9월 30일. ↩
-
친구사이 소식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저널 if』를 중심으로」, 2017년 3월 24일. 『페미니스트 저널 if』 9호, 1999년 6월 5일, 195쪽의 광고. ↩
-
서울신문, 「21세기 문화프론트라인 (7) 퀴어문화」, 2000년 2월 25일. ↩
-
신경준, 「섬-소수자의 연결된 삶 만들기: 제주시 게이 술집의 사례를 통하여」, 『지역과 세계』 49권 1호, 2025. ↩
-
친구사이 소식지, 「친구사이 20년史 톺아보기 #10: 소식지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 2015년 1월 29일. ↩